저기... 번호 좀
[DAY 1]
차창 밖으로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싱그러운 대학생의 분위기를 풍기는, 뽀얀 피부에 강아지상 눈매를 한 남자였다. 그는 주차된 차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다, 운전석에 막 오르려던 백재하와 조수석의 나인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조수석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백재하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변수 발생: 외부 인물 개입].
나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리자, 남자는 붉어진 얼굴로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는데, 정말 제 스타일이셔서요! 혹시… 남자친구 없으시면, 연락처 좀…!
순간, 차 안의 공기가 섭씨 5도쯤은 내려간 것 같았다. 백재하는 운전석 문을 닫지 않은 채, 팔을 차 지붕에 올리고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은 능글맞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막 흥미로운 버그를 발견한 프로그래머처럼 냉랭하고 분석적이었다. 그는 남자의 외모, 말투, 시선의 각도, 나인의 반응까지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스캔했다.
[DAY 2]
브런치 카페. 어제의 해프닝을 겨우 넘기고 팬케이크를 앞에 둔 순간이었다. 이번엔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날카로운 턱선과 반항적인 눈빛을 가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테이블 옆에 멈춰 서더니, 냅킨에 무언가를 휘갈겨 나인 쪽으로 슥 밀었다.
관심 있으면 연락해.
메뉴판을 보던 백재하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그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들고 있던 메뉴판으로 냅킨을 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꺼져. 내 식사 방해하지 말고.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지만, 카페 안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는 듯한 서늘함이 있었다.
[DAY 3 & 4]
이틀 연속으로 기현상은 계속되었다. 대형 서점에서는 지적인 분위기의 안경 쓴 남자가, 백화점에서는 명품을 휘감은 부유해 보이는 남자가 접근했다. 그때마다 백재하는 처음의 유희적인 태도를 완전히 잃었다. 그는 나인의 손을 평소보다 더 꽉 잡고 다녔고, 누군가 접근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살벌한 시선으로 미리 차단해버렸다.
그의 시스템은 ‘정하린에게 접근하는 불특정 다수 남성’이라는 변수를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혹시 새로운 종류의 빌런 능력인가? 특정인을 매혹시키는 페로몬 계열의 정신 공격? 그는 밤새 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전부 검토했지만, 해답은 없었다.
[DAY 5]
연구소 로비에서였다. 한 신입 연구원이 얼굴을 붉히며 나인에게 다가와 수줍게 커피를 건넸다.
나인 가이드님, 항상 팬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에…!
쾅! 백재하가 들고 있던 데이터 패드를 테이블에 내려치는 소리가 로비 전체에 울렸다. 그는 연구원의 멱살을 잡기 직전의 표정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커피를 빼앗아 옆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지금 내 가이드한테 수작 거는 건가? 등급이랑 이름. 말해. 당장.
[DAY 6]
백재하는 거의 노이로제 직전이었다. 그는 외출 자체를 금지하려 했고, 나인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는 반경 5미터 이내에 어떤 남성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벽을 쳤다. 그는 심지어 나인의 그림자 속에 자신의 에너지 파장을 섞어, 접근하는 모든 이에게 ‘임자 있음’이라는 명백한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DAY 7, 그리고 후일담]
일주일간의 소동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마치 정해진 기간이 끝난 이벤트처럼. 그날 저녁,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때였다. 백재하는 영화는 보지도 않고 내내 나인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일주일간의 피로와 풀리지 않는 의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정하린.
그가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진지하게 대답해 줘. 당신, 혹시 나 모르게 무슨 이상한 실험에 참여한 거 있어? 아니면… 빌런의 저주 같은 거라도 받은 건가? 지난 일주일간의 데이터는 그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설명이 안돼.
그는 정말로 심각했다. S급 센티넬의 인과율 연산 능력을 총동원해도, 그저 ‘인기 많은 여자친구를 둔 남자’가 겪는 흔한 질투와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소파 테이블에 있던 자신의 태블릿을 들어 나인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정하린 주변 남성 접근 빈도 급증에 대한 가설]이라는 제목 아래, ‘미확인 페로몬 방출’, ‘신종 정신계 빌런의 타겟팅’, ‘차원 균열의 미세 영향’ 같은 온갖 심각한 가설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장 유력한 건 3번이야. 당신의 가이딩 파장이 일시적으로 변조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주변 남성들을 끌어당겼을 가능성.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아.
그는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을 내려놓고, 나인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리고는 그 손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 손등에 깊게 입을 맞췄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만 봐. 다른 놈들이 쳐다볼 틈도 주지 마. 이건 명령이 아니라, 내 유일한 솔루션이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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