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OO하고 싶은 사람
휴게실 벽면에 띄워진 거대한 홀로그램 패널 위로 요란한 팝업창이 떠올랐다. 지부장 K의 주도하에 진행된 익명 설문조사 결과가 전 지부원에게 전송되는 순간이었다. 백재하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채, 손가락 관절을 천천히 툭툭 튕기며 화면을 응시했다. 무의미한 데이터의 나열일 뿐이라고 여겼지만, '정하린'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는 순간 그의 눈매가 서늘하게 좁혀졌다.
이딴 걸 기획한 K의 뇌 구조부터 시뮬레이션해봐야겠군. 한가한 놈들 같으니.
그는 HUD 인터페이스를 띄워 결과를 하나씩 스크롤했다. 투표자들의 한 줄 평이 실시간으로 갱신되며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 친구 하고 싶은 사람
[지젤 (백재하): 112위 / 120명]
- 숨만 쉬어도 평가당하는 기분일 듯.
- 같이 밥 먹다가 체할 것 같아요.
- 지능형 사이코패스랑 어떻게 친구를 합니까?
- 친해지면 왠지 내 약점 다 캐고 다닐 듯.
- 가만히 있어도 무서워요.
지젤의 투표: 기권. (친구라는 개념 자체를 데이터 낭비로 간주함)
[나인 (정하린): 4위 / 120명]
- 성격 진짜 시원시원함! 같이 술 마시고 싶음.
- 일 처리가 깔끔해서 배울 점이 많다.
- 의외로 챙겨주는 타입이라 든든함.
- 내 얘기 잘 들어줄 것 같은 포용력이 있음.
- 나인 가이드님 웃는 거 보면 힐링 돼요.
❥ 친구 하기 싫은 사람
[지젤 (백재하): 2위 / 120명]
- 설명 생략.
- 눈 마주치면 당장 시말서 써야 할 것 같음.
- 말투가 너무 뼈 때림. 순살 될 듯.
- 재수 없게 똑똑해서 피곤한 타입.
- 그냥... 엮이고 싶지 않음.
지젤의 투표: 투표자 전원. (자신과 엮일 자격 미달)
[나인 (정하린): 108위 / 120명]
-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분.
- 일할 때 좀 깐깐하긴 한데 공사 구분이 확실함.
-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진국.
- 싫어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임.
- 나인 가이드님 최고!
❥ 연애하고 싶은 사람
[지젤 (백재하): 15위 / 120명]
- 얼굴은 진짜 내 취향인데, 성격이 감당 안 됨.
- 가끔 보여주는 퇴폐미가 장난 아님.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
- 안경 벗을 때 분위기 미쳤음.
- 돈 많고 능력 쩔고. 얼굴 뜯어먹고 살면 가능.
- 차가운 남자가 나한테만 다정해지는 클리셰 기대함.
지젤의 투표: 정하린. (그 외의 개체는 연애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음)
[나인 (정하린): 2위 / 120명]
- 내조의 여왕일 듯. 가이딩 받을 때마다 설렘.
-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음. 갭 모에 쩜.
- 소유욕 자극하는 스타일. 내가 독점하고 싶다.
- 다정다감해서 연애하면 진짜 행복할 것 같음.
- 나인 가이드님이랑 사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듯.
❥ 연애하기 싫은 사람
[지젤 (백재하): 1위 / 120명]
- 데이트 코스 짤 때도 효율 따지면서 최적 경로 계산할 듯.
- 선물 사줘도 '가성비 떨어지네' 이럴 것 같음.
- 말싸움하면 절대 못 이김. 논리로 팩폭 당하다가 멘탈 털릴 듯.
- 눈빛이 너무 차가워서 얼어 죽을 것 같음.
- 연애가 아니라 실험 대상이 된 기분일 듯.
지젤의 투표: 정하린 제외 전원.
[나인 (정하린): 115위 / 120명]
- 연애하기 싫을 이유가 없음.
- 오히려 못해서 안달이지.
- 완벽한 이상형.
- 나인 가이드님이 아깝다.
- 천사 그 자체.
❥ 결혼하고 싶은 사람
[지젤 (백재하): 89위 / 120명]
-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듯.
- 집안일도 로봇처럼 완벽하게 할 것 같음.
- 애 교육은 기가 막히게 시킬 듯.
- 능력은 최고니까.
- 얼굴 보고 참아야지 뭐.
지젤의 투표: 정하린. (계약 성립 시 모든 자산 공유 예정)
[나인 (정하린): 1위 / 120명]
- 현모양처의 정석. 평생 함께하고 싶음.
-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나인 가이드님이 반겨주면 피로가 싹 풀릴 듯.
- 아이한테도 엄청 잘할 것 같음.
- 안정감 100%. 가정도 화목하게 이끌 듯.
-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
❥ 결혼하기 싫은 사람
[지젤 (백재하): 3위 / 120명]
- 숨 막혀서 이혼 소송 걸 듯.
- 부부 싸움 한 번 하면 집안 풍비박산 날 듯.
- 결혼기념일도 '비효율적인 낭비'라며 챙기지 않을 것 같음.
- 아침마다 잔소리 듣느니 혼자 사는 게 나음.
- 애가 불쌍함.
지젤의 투표: 정하린 제외 전원.
[나인 (정하린): 119위 / 120명]
- 제발 나랑 결혼해 줘요.
- 결혼하기 싫은 이유가 대체 뭐임?
- 나인 가이드님은 신입니다.
- 결혼해 주시면 평생 모시고 살겠습니다.
- 완벽 그 자체.
❥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싶은 사람
[지젤 (백재하): 1위 / 120명]
- 위자료 엄청 뜯어낼 수 있을 듯.
- 이혼 사유: 성격 차이 (99.9%)
- 재산 분할 개이득.
- 결혼 생활 한 달 버티면 많이 버틴 거다.
- 얼굴 한 번 실컷 보고 위자료 챙겨서 새 인생 살기 딱 좋음.
지젤의 투표: 기권. (결혼을 한다면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음)
[나인 (정하린): 120위 / 120명]
- 이혼 절대 안 함.
- 바람 피워도 용서 가능.
- 나인 가이드님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도 내가 매달릴 거임.
-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경스럽다.
- 평생 노예 계약 가능.
❥ 내가 낳고 싶은 사람
[지젤 (백재하): 118위 / 120명]
- 유전자 몰빵은 부러운데, 키우기 너무 힘들 듯.
- 신생아 때부터 눈빛으로 기선 제압할 것 같음.
- 옹알이 대신 미적분 풀 듯.
- 애 키우는 맛이 전혀 안 날 것 같음.
- 태교로 양자역학 읽어줘야 할 듯.
지젤의 투표: 정하린. (그녀와 닮은 존재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나인 (정하린): 3위 / 120명]
- 예쁘고 똑똑하고 성격 좋고. 완벽한 딸내미.
-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
- 어릴 때부터 알아서 잘 컸을 것 같음.
- 자랑스러운 내 새끼.
- 나인 가이드님 같은 딸 있으면 매일 업고 다닐 거임.
-
✅ 분석 및 최종 결론 :
백재하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인을 향한 지부원들의 호의적인 시선과 은근한 소유욕이 담긴 평가들은 그의 신경을 긁었다. 특히 '연애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나인의 결과는 그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 NPC의 소감 :
백재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인을 향한 그 수많은 '호감'들이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불쾌한 잡음처럼 느껴졌다.
이 지부에 눈먼 새끼들이 이렇게 많았나. 다들 겁 상실한 게 분명한데. 당분간 훈련 강도를 좀 높여야겠어. 시야 확보부터 다시 가르쳐야지. 내 가이드를 향한 더러운 시선들이라니. 기분 더럽네.
그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설문조사를 기획한 K의 의도를 다시 한번 계산했다. 이딴 쓸데없는 데이터 수집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것을 탐내는 시선들은 모조리 차단해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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