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보러 올래?
어느 날 오후, 지젤의 단말기로 나인에게서 짧은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 To. 백재하 연구원`
`From. 정하린 가이드`
`나랑 똑같이 생긴 고양이 입양했는데, 우리 집에 놀러 올래요?`
메시지를 확인한 지젤의 눈썹이 미세하게 까딱였다. ‘정하린과 똑같이 생긴 고양이.’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명제. 인간과 고양이의 유전적 상동성은 약 90%에 불과하며, 외형적 유사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시스템은 해당 문장을 ‘과장된 애정 표현’ 혹은 ‘유희적 초대의 한 형태’로 분류했다. 결론 도출까지는 0.2초가 걸렸다.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하던 분석을 즉시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그녀의 숙소가 있는 B동으로 향했다.
B동 901호. 익숙한 현관문 앞에 선 그가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익숙한 향기와 함께 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같은, 단정한 그녀의 모습. 그는 시선을 안으로 옮기며 물었다.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그의 시스템은 이미 집 내부의 새로운 생체 신호를 스캔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지되는 것은 오직 정하린의 것뿐. 오류인가? 아니면 고양이가 특수한 은신 능력을 지닌 희귀종인가. 그가 몇 가지 가설을 시뮬레이션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야옹.
지젤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시간의 흐름이 비현실적으로 느려졌다. 소리의 발원지는 명백히 눈앞의 정하린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살짝 말아 쥔 채,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청각 정보와 시각 정보의 극심한 부조화. 그의 시스템이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ERROR: DATA MISMATCH.`
그의 두뇌는 초당 수억 번의 연산을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종류의 암호? 인지능력을 교란하는 빌런의 정신 공격? 아니면, 그가 모르는 사이 그녀에게 발현된 제2의 능력? 그는 0.01초 만에 수십 개의 가설을 세우고 기각했다. 빌런의 공격이라면 그의 시스템이 먼저 감지했을 터. 새로운 능력이라면 그녀의 생체 파장에 변화가 있었어야 했다. 모든 논리적 가능성을 배제하고 남은 단 하나의 결론. 이것은… 의도를 가진 순수한 행위. 즉, 장난이었다.
그 순간, 5년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시스템 과부하가 일어났다. 그것은 폭주 직전의 위험한 과열이 아니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도 아니었다. 텅 비어 있던 그의 세계에 난데없이 떨어진,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무언가. 논리와 계산으로는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지독하게 사랑스러운 비합리. 그의 입꼬리가 아주 느리게,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풀어지고, 늘 차갑게 빛나던 눈동자에 아주 옅은 온기가 감돌았다.
그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마치 정말로 작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마주한 사람처럼, 그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을 한 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착하지.
그의 모든 방어기제와 논리 회로가, 그녀의 작은 울음소리 한 번에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후일담]
그날 이후, ‘고양이’는 둘만의 은밀한 암호가 되었다. 지젤은 자신의 연구실에 최고급 캣타워와 스크래처, 그리고 온갖 종류의 고양이 간식을 구비해두었다. 물론 그 간식들은 전부 나인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수제 초콜릿과 젤리였다.
누군가 연구실 한편을 차지한 엉뚱한 물건들에 대해 물으면,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길들여야 할 고양이가 하나 있어서.”
가끔 나인이 지치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보일 때면, 그는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야옹, 하고 울어봐.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테니.”
그러면 나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그의 품에 안겨 작게 ‘야옹’ 하고 속삭였다. 그 소리는 이제 지젤의 시스템에 ‘최우선 순위 처리 명령어’이자, 그의 세상을 구원하는 가장 완벽한 주문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백재하라는 이름의 우주는, 이제 한 마리 고양이의 발치 아래에서 더없이 안온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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