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으면 냐냐냥 해!
고요한 연구실, 오직 냉각 팬이 돌아가는 낮은 소음과 키보드를 두드리는 희미한 타격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젤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여러 개의 반투명 HUD 인터페이스를 응시하며, 데이터 스트림의 흐름을 쫓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하에,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평온한 오후였다. 바로 그 순간, 그의 개인 단말기가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 한구석에 메시지 도착을 알렸다. 발신인은 ‘정하린’. 그것만으로도 그의 시선은 모든 데이터 스트림을 무시하고 단말기로 향했다.
그는 무심하게 손짓해 허공에 메시지 창을 띄웠다. 내용은 지극히 짧고, 기묘했다.
`[From: 정하린]`
`백재하에게. 아주 흥미로운 걸 알아냈어. ‘GISELLE SEQUENCE’의 예측 범위를 완벽하게 벗어나는, 어쩌면 유일한 ‘버그’에 대한 정보야. 듣고 싶으면, 딱 한 번만 외쳐.`
`냐냐냥!!`
…정적.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미동도 없이 메시지를 응시하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냐냐냥’. 음절 단위로 분해된 단어들이 그의 시각 피질에서 의미 없는 기호의 나열로 떠다녔다. 그는 눈을 깜박였다. 다시 읽었다. 여전히 ‘냐냐냥’이었다. 느낌표는 두 개. 강조의 의미. 완벽하게 이해했지만,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시뮬레이션 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각 창에는 ‘냐냐냥’이라는 단어와 느낌표 두 개가 각기 다른 폰트와 크기로 번쩍였다.
<시뮬레이션 1: 무시한다>
결과: 정하린, 삐짐. 가이딩 효율 3.7% 저하 예상. 향후 72시간 동안 안아주기 프로토콜 요청 거부 확률 89%. 최악의 경우, ‘바보’라는 단어를 듣게 될 가능성 농후.
…기각.
<시뮬레이션 2: ‘이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라고 답장한다.>
결과: 정하린, 상처받음. 감정 파형 급격한 하강 곡선. 이후 관계 회복을 위해 소모될 감정적 비용 예측 불가. ‘바보’ 확정.
…최악. 즉시 폐기.
<시뮬레이션 3: 전화를 걸어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결과: “싫어. 그냥 해줘.” 라는 비논리적 답변이 돌아올 확률 99.8%. 대화가 길어질수록 ‘냐냐냥’을 해야 할 이유만 늘어남. 최종적으로는 하게 됨. 과정만 복잡하고 결과는 동일. 비효율적.
…기각.
지젤은 허공을 향해 낮게 신음하며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그의 완벽한 시스템이 고작 세 음절의 무의미한 단어 앞에서 마비 상태에 빠졌다. ‘SEQUENCE의 버그’. 그 미끼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만약 정말이라면? 그가 모르는 변수가 그의 능력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의 세계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 대가가…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자존심과 지적 호기심 사이에서 그의 내면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손가락이 ‘ㄴ’ 키 위에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이건 정하린의 함정이다. 분명 별거 아닌 걸로 자신을 놀리려는 수작일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진짜라면?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녀였고, 그녀와 관련된 데이터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모든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마치 국가 기밀문서를 전송하듯, 신중하고 장엄한 손길로 타자를 쳤다. 그리곤 전송 버튼을 누른 직후, 마치 오염 물질이라도 만진 것처럼 손을 떼고는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었다.
정하린의 단말기가 짧게 울렸다.
`[From: 백재하]`
`…냐냐냥.`
메시지를 보낸 직후, 지젤은 약 5분간 이마를 짚은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내부 시스템은 ‘냐냐냥’이라는 단어가 남긴 파장을 수습하며 자가 진단 프로토콜을 수백 번쯤 돌리고 있었다. 모든 계산이 단 하나의 변수, 정하린의 답장을 기다리며 정지된 상태였다. 그가 이토록 간절하게 데이터 전송을 기다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말기가 다시 짧게 울렸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허공에 뜬 메시지 창을 응시했다. 심호흡 한번과 함께, 그의 모든 지적 자원과 연산 능력이 다음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총동원되었다.
`[From: 정하린]`
`정답! ‘GISELLE SEQUENCE’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유일한 버그는 바로…`
`오늘 아침 인터넷에서 본 ‘오늘의 운세’야!`
`거기서 그러는데, 내가 오늘 ‘검은 고양이’를 조심해야 한대. 너도 검은 옷 자주 입잖아? 그러니까 내 시퀀스의 예측을 벗어난 우주의 변수가 너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거지. 놀라운 발견 아니야?`
…
…
연구실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사라졌다. 냉각 팬 소리도, 데이터가 흐르는 미세한 전자음도. 오직 지젤의 망막에 박힌 ‘오늘의 운세’라는 단어만이 뇌리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의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던 HUD 인터페이스 창들이 일제히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논리 회로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 나타나는 전조증상이었다. ‘검은 고양이’. ‘우주의 변수’. 그 단어들이 그의 정교한 시스템을 사정없이 비웃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텅 빈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무(無)에 가까웠다. 조금 전, 자신의 지성과 자존심을 걸고 ‘냐냐냥’을 입력했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저려왔다. 시뮬레이션 수천 개를 돌려 예측했던 ‘버그’의 실체는, 결국 길거리 타로카드와 다를 바 없는 비논리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한참의 침묵. 마침내 그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미세하게 끌려 올라갔다. 어이없음이 임계점을 돌파하자 차라리 웃음이 났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정하린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의 완벽한 세계에 가장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모든 것을 제멋대로 휘저어 놓는다.
그는 키보드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이전의 단호함 대신, 유희적인 살기가 손끝에 감돌았다.
`[To: 정하린]`
`아주 흥미로운 가설이야. 검증할 가치가 있겠어.`
`그 운세, 내가 오늘 밤 직접 증명해주지. ‘검은 고양이’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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