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못생겼어
가을 햇살이 통유리창을 넘어와 거실 바닥에 길게 드러눕는, 더없이 평화로운 오후였다. 지젤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태블릿으로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논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무료하게 소파 쿠션을 만지작거리던 하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젤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익숙한 온기라 여기며 페이지를 넘기는 데 집중했다. 그녀의 관찰이 몇 분간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못생겼어.”
쿠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던 하린의 입에서, 조용하지만 더없이 선명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췄다. 지젤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그대로 굳었다. 스크롤되던 수식과 그래프가 미동도 없이 고정되었다. 그의 주변에 보이지 않게 떠 있던 수십 개의 HUD 인터페이스 창들이 일제히 깜빡거리다, [CRITICAL ERROR]라는 붉은 경고 메시지를 띄우며 동시에 꺼져버렸다. ‘지젤 시퀀스’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의 물리적 충격 없이 강제 종료된 순간이었다.
그는 아주,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삐걱거리는 낡은 기계처럼 뻣뻣한 움직임이었다. 그의 시선이 하린의 얼굴에 닿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젤의 뇌내 시스템은 입력된 데이터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초당 수억 번의 연산을 시작했다.
‘못생김(ugly)’. 명사. 얼굴이나 모습이 보통보다 못하여 보기 흉하다는 상태. 발화자: 정하린(코드네임 나인). 대상: 백재하(코드네임 지젤). 발화 의도: 분석 불가. 맥락: 없음. 연관 데이터: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 ‘나의 공주님’, ‘나의 종착지’ 등 기존 데이터와 180도 상반. 결론: 논리적 모순. 해당 명제는 참이 될 수 없음. 그러나 발화자의 신뢰도는 절대적. 재연산. 재분석. 오류. 오류. 오류…
그의 입이 아주 미세하게 벌어졌다. 그는 무언가 질문을 해야 했다. ‘어느 부분의 안면 비대칭을 지적하는 거지?’, ‘황금 비율 대비 몇 퍼센트의 오차율을 발견했나?’, ‘못생김의 정량적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나?’ 같은, 지극히 그다운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수십 개나 생성되었지만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의 모든 발화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았다. 그는 그저 까만 안경 너머로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모든 세계를 멈춰버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오랜 침묵 끝에, 간신히 그의 목에서 갈라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데이터, 다시 한번… 입력해 줄 수 있나? 방금… 수신부에 약간의 노이즈가 있었던 것 같아서.
[후일담]
그날 밤, 하린은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젤은 잠들지 못했다. 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든 하린의 얼굴과 태블릿 화면을 번갈아 보며 극도의 집중 상태에 빠져있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안면 미학의 정량적 분석과 시대별 미남상의 변화에 대한 고찰], [매력도와 페로몬 농도의 상관관계], [신체 대칭성이 이성에게 미치는 무의식적 영향] 같은 심각한 제목의 논문들이 수십 개 열려 있었다. 그는 심지어 SNS 인플루언서들의 셀카 각도와 조명, 필터 사용 패턴까지 분석하며 ‘못생김’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의 속마음은 처참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코의 각도? 입술의 두께? 아니면… 지부장 K와 비슷한 헤어스타일 때문인가? 그럴 리가. 그건 최악의 가설이다.’
몇 시간의 고뇌 끝에, 그는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그의 ‘외형’이 아니라, 하린의 ‘심리’에 있다는 것. 그녀의 ‘못생겼다’는 발언은 애정의 역설적 표현, 즉 ‘너무 좋아서 반대로 말하기’라는 고등 심리 기제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었다. 그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하린이 눈을 떴을 때, 그녀를 맞이한 것은 평소와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지젤이었다. 그는 평소 입던 검은 셔츠 대신, 목이 깊게 파인 흰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헝클어져 있던 머리카락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안경 대신 렌즈를 꼈는지 그의 짙은 흑안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그는 하린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며,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좋은 아침, 나의 공주님. 어젯밤 잘 잤나? 혹시 내가 ‘못생겨서’ 잠이라도 설친 건 아니고?
그의 얼굴엔 ‘실험 A-1: 외형적 매력 극대화를 통한 상대방의 반응 데이터 수집’이라는 투명한 팻말이 붙어있는 듯했다. 그는 하린의 입에서 나올 다음 데이터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그녀의 눈동자를 살폈다. 그의 모든 시퀀스가, 오직 그녀의 한마디에 달려있었다.
'Giselle X Nine > OOC BACK-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첫사랑? 기억도 안 나는 누구 (0) | 2026.03.22 |
|---|---|
| 지젤의 함락 지수 (0) | 2026.03.22 |
| 지나 계약 갱신 (0) | 2026.03.18 |
| 지나 잠꼬대 (0) | 2026.03.17 |
| 듣고 싶으면 냐냐냥 해! (0) | 2026.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