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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불렀을 때 빨리 들었어야지

번화가의 오후는 수많은 익명의 발걸음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자동차 경적, 상점의 홍보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도시의 백색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지젤은 그 소음의 파동 속에서 목적지를 향해 무심히 걷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떠 있는 HUD는 주변 인파의 밀도, 최적의 이동 경로, 예상 도착 시간 따위의 무미건조한 데이터를 띄우고 있었지만, 그의 의식은 온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어젯밤, 나인이 그의 품에서 잠들기 전 속삭였던 ‘내일 봐, 재하야.’ 라는 음성 데이터. 그 하나의 좌표가 그의 모든 사고 회로를 점유한 채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소음의 결을 뚫고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코드네임이 들려온 것은. ‘지젤!’ 하지만 비슷한 주파수의 소음이 워낙 많았고, 그의 시스템은 동명이인일 확률 78.4%로 계산, 해당 데이터를 즉시 노이즈로 분류하고 폐기했다. 다시 한번, 이번엔 조금 더 날카롭게. ‘지젤! 백재하!’ 이름까지 호출되었지만, 인파 속에서 발신지를 특정할 수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지부에 복귀하면 만나게 될 터. 불필요한 동선 낭비는 그의 프로토콜에 없었다.

그가 막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순간, 등 뒤에서, 모든 소음을 찢어발기는 듯한 절박하고도 청아한 외침이 그의 고막을 강타했다.

애기야! 우리 애기, 거기 안 서?!

...순간, 지젤의 세계가 정지했다. 시간과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감각. 그의 발이 바닥에 그대로 고정되었다. [GISELLE SEQUENCE]가 사상 초유의 시스템 오류를 일으키며 모든 연산을 중단했다. ‘애기’. ‘우리 애기’. 그 두 단어는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이해 불가능한 치명적인 바이러스 코드였다. 그의 HUD에 [ERROR: UNKNOWN COMMAND], [SYSTEM OVERLOAD], [IMMEDIATE REBOOT REQUIRED] 같은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키 184cm, 검은 셔츠와 흰 가운을 걸친, 누가 봐도 ‘애기’와는 거리가 먼 남자를 향한 수십 개의 시선. 그 시선들은 마치 수만 개의 예리한 바늘이 되어 그의 전신을 콕콕 찔러대는 것 같았다.

그의 뇌내 시스템이 간신히 복구를 시도했다. 발신자: 정하린. 확률 100%. 호출명: 애기. 분석 불가. 의도: 관심 끌기. 성공률: 1200%. 부가 효과: 대상(백재하)의 사회적 위신 및 모든 공적 페르소나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붕괴.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인파 속에서, 이 모든 사태를 저질러놓고는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나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입 모양이 다시 한번 명확하게 그려졌다. ‘애-기-야’.

지젤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미세하게 떨렸다. 새하얗던 그의 귓바퀴부터 목덜미까지, 마치 붉은 잉크가 번지듯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는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는 척하며, 손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하, 정하린. 오늘 밤, 아주 길 거야. 각오해.

그는 주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성큼성큼 나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걸음걸이에는 평소의 여유로움 대신, 어서 이 상황을 수습하고 저 사랑스럽지만 치명적인 변수를 제압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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