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회식자리 OOC
그날 저녁, 한국 지부 [Fearless]에는 전례 없는 평화와 함께 기묘한 활기가 넘쳤다. 차원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빌런들은 숨을 고르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드문 고요함을 틈타 지부장 K는 ‘팀 단합 및 사기 진작’이라는 명목하에 전 부서 회식을 명했다. 문제는, 센티넬과 가이드, 그리고 행정 지원팀이 각각 다른 장소에 배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S급 센티넬 백재하는 지부 내 다른 센티넬들과 함께 연기가 자욱한 고깃집 철판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의 옆자리에서는 B급 센티넬 블레이즈가 삼겹살 기름을 튀기며 세 번째 냉면 사리를 주문했고, 맞은편의 C급 센티넬 아이스는 소주병을 따며 자신의 전과를 무용담처럼 떠들었다. 백재하는 까만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턱을 괴고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 허공에는 오직 그에게만 보이는 HUD 인터페이스가 번쩍이고 있었다.
`[SYSTEM WARNING] 소음 레벨 85dB 초과. 권장 청력 보호 프로토콜 실행 불가. 원인: 사회적 상호작용. `
`[ANALYSIS] 대상 '블레이즈'의 단백질 섭취량, 권장치의 230% 초과. 24시간 내 소화불량 확률 78%.`
`[SIMULATION] 대상 '아이스'의 혈중 알코올 농도 기반 다음 발언 예측:
내가 왕년에 말이야...
(정확도 99.8%)`
그는 미간을 짚었다. 이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집합체는 그의 연산 능력을 무의미한 데이터 처리에 낭비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목적 없는 대화의 연속. 차라리 빌런 웨이브 한가운데가 더 정돈된 환경이리라. 그는 테이블 밑으로 개인 단말기를 꺼내, 딱 하나의 목적을 가진 메시지를 입력했다.
`[TO: 파트너] 언제 끝나.`
1초의 지연도 없이 답장이 도착했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FROM: 파트너] 이제 시작했는데요? 우리 하린이 보고 싶어서 어떡해~`
‘우리 하린이’. 그 단어에 그의 시스템이 순간적인 과부하를 일으켰다. 그는 짧게 헛기침을 하며 고기 굽는 척, 집게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하린이 있는 가이드 회식 장소가 이곳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시퀀스가 빛의 속도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PROTOCOL INITIATED] '정하린 실시간 동선 및 주변 환경 분석 v3.1'`
`[RISK ANALYSIS] 현재 정하린 주변 남성 가이드 수: 4명. 잠재적 위협 요소: A급 가이드 '루크'. 특이사항: 과거 정하린에게 커피를 사준 이력 1회 발견.`
백재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란하게 떠들던 센티넬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꽂혔다.
먼저 일어나지. 급한 연산이 있어서.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막지 못했다. 그는 계산대로 향하며 지부 법인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저 끝 테이블까지, 전부 이걸로 계산하지.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지금부터 30분간, 저 테이블에 술이나 고기를 추가하지 마. 그들이 집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사장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선 백재하는 밤공기 속에서 다시 단말기를 들었다. 정하린이 있는 고깃집 이름을 확인하고, 그곳의 실시간 CCTV 화면을 해킹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화면 속, 그녀는 동료 가이드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에는, 보란 듯이, A급 가이드 '루크'가 앉아 있었다.
`[SYSTEM ALERT] 위협 요소 '루크', 목표 '정하린'에게 쌈을 싸주는 행위 포착. 물리적 접촉 발생. 코드: YELLOW.`
백재하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길 건너편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스 초코 라테와 온갖 종류의 초콜릿 케이크를 품에 가득 안았다. 그의 행동은 마치 오랜 시간 훈련받은 특수요원처럼 신속하고 정확했다.
`[MISSION UPDATE] '정하린 회수 및 소유권 재확인 프로토콜' 실행. 부제: 방해물 제거 및 디저트를 이용한 행복도 극대화.`
잠시 후, 정하린이 있는 고깃집 문이 열리고, 한 손에는 아이스 초코 라테를, 다른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를 든 백재하가 나타났다. 가게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는 성큼성큼 정하린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쌈을 싸주던 '루크'의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가볍게, 하지만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 손, 내 파트너 입에 닿기엔 좀 더러운 것 같은데.
그는 싸늘하게 말하며 루크의 손에 들린 쌈을 빼앗아 옆 빈 그릇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정하린 옆에 쪼그려 앉아,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파트너, 디저트 시간이야. 이런 기름진 것보다 훨씬 네 취향일 텐데.
그는 아이스 초코 라테에 빨대를 꽂아 그녀의 입에 물려주고는,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초콜릿 케이크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를 둘러싼 모든 가이드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백재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정하린만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회식, 재밌어? 이제 끝낼 시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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