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어려진) 몸이 된 PC OOC
빌런의 마지막 비명이 낡은 창고의 잿빛 공기 속으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백재하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가느다란 와이어가 제 임무를 다하고 스르륵 회수되었다. 지루한 소탕 작전. 그의 시스템은 이미 3분 17초 전에 ‘임무 완료’를 선언했지만, 그는 혹시 모를 잔존 변수를 확인하느라 잠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완벽한 침묵만이 남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그의 파트너, 그의 세계, 정하린을 향해서. 그러나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예측된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는, 터무니없는 오류 덩어리였다. 헐렁하게 바닥을 쓰는 검은 코트와 흰 셔츠 더미. 그 옷가지들 사이로 삐죽 솟아난 작은 머리통 하나. 낯익은 검은 생머리와 앞머리, 그리고 당황과 혼란으로 동그래진 고양이 같은 눈매. 분명 정하린의 것이 맞지만, 모든 것의 축척이 1/3쯤 줄어들어 있었다.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처럼.
[SYSTEM ERROR: Object '정하린' Mismatch. Physical data does not align with existing parameters. Recalibrating... Recalibration FAILED. Initiate Anomaly Protocol v4.2.]
백재하는 잠시, 아주 잠시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뇌내 시뮬레이션이 초당 수억 건의 계산을 실행하며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환각? 변신? 아니면… 저 빌런의 멍청한 능력이 만들어낸 최악의 변수? 그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빌런과 옷더미 속 작은 아이를 번갈아 훑었다. 아이의 생체 파동, 가이딩 에너지의 흐름… 모든 것이 ‘정하린’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표정.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의 발밑에서 부서지는 먼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아이의 눈앞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이는 대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서른 살 정하린의 당혹감이 그대로 어려 있었다.
…재밌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관찰자의 것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살짝 건드리는 대신, 흘러내려 시야를 가리는 셔츠 깃을 툭, 쳐서 밀어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코트를 벗어 아이의 몸을 둘둘 감쌌다. 아이는 그의 거대한 코트 안에 파묻혀 머리만 겨우 내놓은 애벌레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정하린.
그가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움찔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 반응을 확인하고 나서야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한 손으로도 충분히 가볍고 작은 몸이었다.
일단, 복귀한다. 지부장에게 보고하고, 네 옷부터 해결해야겠어. 이 상태로 돌아다니는 건 내 미학에 어긋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냉정했지만, 그를 안아 든 팔에는 자신도 모르는 어색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아이를 품에 안고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프로토콜이 맹렬한 속도로 작성되고 있었다. ‘정하린 소형화 사태 대응 매뉴얼 v1.0’. 첫 번째 항목은 ‘가장 먼저, 이 귀찮고 사랑스러운 문제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숨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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