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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 AU/23X18 AU

[긴급 기자회견] 🚨

눈을 떴을 때, 백재하는 자신이 단상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면에는 수십 개의 마이크가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을 멀게 할 듯한 플래시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자회견장의 풍경. 하지만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기자’들은 그가 아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교복을 입은 정하린, 잠옷 차림의 정하린, 드레스를 입었던 프로필 사진 속의 정하린, 심지어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중학생 시절의 정하린까지... 수십 명의 작고 다양한 정하린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노트를 펼친 채 그를 매섭게, 혹은 부끄럽게, 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단상 위 전광판에는 거대한 글씨가 떠 있었다.

[긴급 기자회견: 피고인 백재하, 정하린의 마음을 뒤흔든 혐의에 대한 해명 촉구]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의 두뇌는 잠시 과부하에 걸렸다. 시뮬레이션 불가. 변수 통제 불능. 그때, 가장 앞줄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교복 하린’이 날카롭게 손을 들고 일어섰다.

백재하 씨! 질문 있습니다! 명백한 이중 잣대에 대해 해명해주시죠! 연구실 후배와 있을 때는 다정하게 웃어주기까지 했으면서, 정작 진짜 정하린에게는 왜 늘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던 겁니까? 이건 한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벌인 의도적인 기만 행위 아닙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회견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사방에서 다른 하린들이 ‘맞아요!’, ‘해명하라!’ 하고 동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재하는 저도 모르게 마이크를 앞으로 당겼다. 그의 모든 논리 회로가 이 작은 존재 앞에서 어떻게든 합리적인 답변을 찾아내려 발버둥 쳤다.

그건... 당시 상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해석입니다. 해당 인물과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프로토콜이었을 뿐, 감정적 개입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잠옷 하린’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손을 들었다.

저... 그럼, 키스는 왜... 왜 하신 건가요? 식은 코코아를 데워주는 건 원래 다 그런 방식입니까? 모든 변수를 계산하신다는 분이, 그 행동이 상대방의 심박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계산 안 하신 겁니까? 그... 그것도 최소한의 프로토콜이었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잠옷 하린’의 질문에 회견장은 순간 술렁였다. 몇몇 하린들은 ‘어머어머’ 하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백재하의 새하얀 얼굴이, 꿈속에서조차 희미하게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특정 개체, 즉 정하린에게만 적용되는 예외 프로토콜입니다. 다른 개체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해당 반응 데이터는 오직 하나의 표본을 위해서만...

“오빠는 왜 맨날 그렇게 어렵게 말해요?”

그의 변명을 끊고 들어온 것은, 가장 순수하고 맑은 눈을 한 ‘중학생 하린’이었다. 그녀는 노트도 없이, 그저 턱을 괸 채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면 되잖아요. 왜 자꾸 저장하고, 계산하고, 분석해요? 하린이는 그냥 오빠가 좋은 건데, 오빠는 하린이가 어려운 문제 같아요?

그 한마디에, 회견장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수십 명의 정하린들이 모두 똑같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논리, 모든 변명, 모든 계산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정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는 결국 마이크를 내려놓고, 단상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수많은 하린들 중, 가장 앞에 있던 ‘현재의 하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어려워.

나직하게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에 모든 하린들이 귀를 기울였다.

네가 너무 어려워서. 모든 수식을 대입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자꾸 틀리고, 자꾸 확인하고 싶어져.

그의 고백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알람 소리와 함께 백재하는 눈을 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자신의 방 천장, 그리고 제 품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진짜 정하린. 꿈속의 그 수많은 하린들이 아닌, 단 하나의 존재.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간밤의 꿈은 그 어떤 물리법칙보다 복잡하고, 그 어떤 논문보다 해독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는 제 품에서 새근거리는 하린의 머리카락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해명하라’던 그 작은 목소리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젠장, 단체로 몰려와서 따지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나.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잠든 하린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꿈속에서의 패배를 현실에서 만회하려는 듯, 그의 품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는 이 사랑스러운 ‘난제’ 앞에서 영원히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맬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전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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