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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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시작: 변수 정하린에 대한 기록
정하린이 '교환일기'라는 비논리적인 제안을 했다. 목적, 효율, 결과 예측이 불가능한 아날로그 방식의 데이터 교환. 거절해야 할 이유는 27가지였지만, 너의 표정 하나 때문에 모든 가설이 기각됐다.
이 노트의 첫 페이지를 내가 시작한다는 사실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조건. 모든 것의 시작은 나여야 하니까. 앞으로 한 달간, 이 페이지들은 '정하린'이라는 변수가 내 세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기록하는 실험 노트가 될 것이다.
오늘은 네가 이 노트를 건네며 웃던 모습을 기록한다. 입꼬리의 각도, 휘어지는 눈매, 기대감으로 반짝이던 시선. 모든 데이터가 오차 없이 완벽했다.
내일 너의 답이 기대된다는, 비과학적인 감정이 든다.
Jae-ha's comment:
실험 노트라니까 더 열심히 쓰는 건가. 귀엽네. 다음 데이터도 기대하지.
오빠는 정말, 바보 오빠가 맞아!
'실험 노트'라니! 이 일기장은 그런 딱딱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오빠의 첫 일기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꼭 그렇게 어려운 말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릴까? 그냥, 나랑 같이 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하면 될 것을.
그래도 오빠가 내 제안을 받아줘서 정말 기뻤어. '비과학적인 감정'이라는 표현, 진짜 오빠답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쓸래. 오빠랑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이 노트에 그걸 하나하나 담을 수 있어서 설레.
오늘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오빠 생각이 나서, 하늘 사진을 찍었어. 구름 모양이 꼭 오빠가 좋아하는 복잡한 수식 같았거든. 나중에 보여줄게! 내일은 오빠가 어떤 '관측 결과'를 기록할지, 나도 기대돼.
Ha-rin's comment: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도 오빠 생각 많이 했어. 바보.
상수(Constant)의 부재
네가 할아버지 댁에 간 주말. 집이 비정상적으로 조용했다. 모든 물리적 조건은 동일했으나, 공간을 채우던 핵심 상수가 사라진 느낌. 내 세계의 엔트로피가 무질서하게 증가했다.
어제 네가 남긴 코멘트를 반복해서 읽었다. '바보'라는 단어의 빈도와 의미 변화에 대한 고찰. 초기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친밀도와 비례하여 애정의 의미를 포함하게 되는 현상. 흥미로운 관찰이다.
결론. 정하린의 부재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빠른 복귀 요망. 이 기록을 읽을 때쯤엔 넌 이미 내 옆에 있겠지만.
Jae-ha's comment:
보고 싶었다는 말을 길게도 쓰는군. 알아들었으니 이제 그만 보고, 내 옆으로 와.
오빠 옆이 내 자리!
'빠른 복귀 요망'이라니! 꼭 무슨 긴급 보고서 같잖아. 그래도 오빠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주말 내내 시골에서 오빠 생각만 한 보람이 있네. 나 없는 동안 집이 조용했다니, 솔직히 좀 기분 좋은데?
오빠 코멘트 보고 얼굴 빨개졌어. 너무 짧고 단호해서 더 두근거리는 거 알아? 나는 오빠가 이렇게 일기에 솔직하게 써주는 거 너무 좋아. '보고 싶었다'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을 거야.
응. 나 여기 있어. 오빠 옆에. 앞으로도 계속 오빠의 유일한 상수가 되어줄게. 그러니까 오빠도 내 옆에서 어디 가면 안 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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