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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 AU/23X18 AU

교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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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일 (월) 날씨: 구름 사이로 쨍쨍 ☀️

가설 01: 교환일기의 효용성

정하린이 내민 다이어리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빳빳한 표지, 빼곡하게 채워질 새하얀 내지. ‘교환일기’라는 단어의 아날로그적인 어감이 낯설면서도, 제안한 사람의 얼굴과 겹쳐지며 모든 연산을 정지시켰다.

가설. 이 행위는 우리의 관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텍스트로 기록된 감정은 휘발되지 않고 박제된다. 즉, 모든 문장은 돌이킬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위험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반론. 너의 필체로 기록될 나의 하루, 나의 필체로 기록될 너의 하루를 관측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너의 시선이 머문 곳, 너를 웃게 한 것, 너의 사소한 모든 데이터가 이 페이지에 남는다.

결론. 위험성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 일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기록이 될 것이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지만, 나의 모든 것은 보여주기 두려우니까. 첫 장부터 모순이다. 그래도 시작의 버튼은, 네가 눌렀다. 이제 멈출 수 있는 권한은 우리 둘 중 누구에게도 없다.

- 재하

💬 하린's 코멘트:

첫 장부터 이렇게 멋있으면 반칙이야. 불공정해도 괜찮아. 네가 쓰는 모든 문장이 내 정답이니까. (p.s. 내 필체 예쁘게 봐줘야 해!)

2024년 7월 2일 (화) 날씨: 오후에 소나기 🌦️

첫 번째 답장을 쓰는 마음

네가 쓴 첫 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몰라. 꼭 어려운 과학책을 읽는 것 같다가도, 마지막 문장에선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무슨 일기 시작부터 이렇게 비장해! 덕분에 이걸 쓰는 지금도 엄청 긴장돼서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아.

오늘 점심시간에 네가 과학실 창가에 기대서 꾸벅꾸벅 조는 걸 봤어. 햇살이 꼭 너만 비추는 것처럼 쏟아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몰래 훔쳐봤다. 어제 일기 쓰느라 늦게 잔 건 아니지? 괜히 내가 피곤하게 만든 건가 싶어서 걱정됐어. 내가 모르는 너의 시간을 이 일기장을 통해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게 되어서, 나는 정말 기뻐. 너의 모든 순간이 궁금하니까.

내일은 네가 이 글을 읽겠지? 무슨 생각을 할까? 벌써부터 두근거려. 이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기록이 될 거야.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 하린

💬 재하's 코멘트:

너의 글씨는 그 어떤 명필보다 아름다워. 그리고 네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그 문장이, 지난 하루의 모든 피로를 사라지게 했다. 이제 매일 너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것 같군.

2024년 7월 15일 (월) 날씨: 후덥지근하고 흐림 ☁️

오류: 질투라는 감정의 비효율성

벌써 보름이 지났다. 페이지가 채워질수록 너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지만, 이상하게도 너는 더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오늘, 김민준이 네게 장난을 쳤다. 네가 웃었다. 그 순간, 내 모든 사고 회로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가 이토록 거대한 연산 오류를 발생시킬 줄은 몰랐다. 감정 소모, 시간 낭비. ‘질투’는 모든 면에서 비효율적인 감정이다. 머리로는 분석이 끝나는데, 심장은 통제를 벗어난다. 하루 종일 칠판 대신 너와 김민준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결국 방과 후에 민준에게 경고했다. 네 반경 1미터 이내 접근 금지. 유치한 소유욕이라는 걸 알지만, 수정할 생각은 없다. 네 웃음의 소유권은 나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독점욕. 이 비합리적인 감정조차 너로 인해 발생했으니, 결국 모든 원인은 너다. 책임져, 정하린.

- 재하

💬 하린's 코멘트:

어쩐지 민준이가 나를 피하더라! 너 정말 못 말려. 바보야, 내 웃음 소유권은 원래부터 네 거였어. 네가 질투하는 거, 엄청 귀여운 거 아는지 모르겠다. 책임질게, 얼마든지.

2024년 7월 16일 (화) 날씨: 맑음, 바람 솔솔 🍃

나의 유일한 변수에게

어제의 일기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전교 1등 천재 백재하가 질투 때문에 그런 유치한 경고를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넌 가끔 너무 귀여워서 탈이야.

네가 나 때문에 연산 오류를 겪는 것처럼, 나도 너 때문에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 네 무심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붕 떠 있다가도, 다른 친구랑 웃는 모습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나. 네가 모르는 이런 내 모습들을, 이 일기장에는 솔직하게 전부 다 보여주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그런 비합리적인 감정들을 부끄러워하지 마.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끝에 내가 있다는 게,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너는 모를 거야. 네 세계를 흔드는 유일한 변수가 나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가장 큰 확신이거든.

내일 보자, 나의 유일한 천재이자, 나의 유일한 바보야.

-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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