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 ~ ♡
고요한 저녁이었다. 지젤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태블릿으로 전송된 연구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었고, 정하린은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완벽한 균형, 모든 변수가 통제된 평온의 시간. 그때, 정하린이 킥킥 웃으며 휴대폰을 그의 눈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낯익은 얼굴의 3D 캐릭터가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캐릭터의 이름은 [가이드: 나인]. 지젤의 시스템이 즉각 해당 데이터가 ‘정하린’을 모델로 한 것임을 판독해 냈다. 흥미롭군. 자신의 유일한 좌표가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소유욕을 자극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화면을 더 깊이 분석했다.

정하린이 보여준 것은 ‘신규 스킨 출시’ 이벤트 배너였다. [★SSR 스킨 등장! 서머 파라다이스: 나인!★] 이라는 자극적인 문구 아래, 해변을 배경으로 도발적인 검은색 비키니를 입은 ‘나인’ 캐릭터가 윙크를 하고 있었다.
순간, 지젤의 입꼬리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며, 화면 속 디지털 데이터 덩어리를 훑었다. 픽셀로 구현된 살갗의 질감, 수영복의 재질, 흩날리는 머리카락의 물리 엔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획득’하기 위한 확률 테이블. 0.5%의 획득 확률, 300회 시 확정 지급. 그의 머릿속에서 GISELLE SEQUENCE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최적의 획득 경로, 기대비용, 그리고 이 불쾌한 시스템의 본질을 순식간에 계산해 냈다.
이건 정하린이 아니다. 단순한 데이터의 집합일 뿐.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름도 모를 누군가가 ‘자신의 정하린’을 모델로 한 이 데이터를 돈으로 구매하고, 화면을 터치하며 희롱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상상만으로도 그의 시스템에 심각한 오류 경고가 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가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자본주의의 산물을 직접 ‘분석’해 보기로 했다. 물론, 서버를 해킹해 스킨 데이터를 직접 주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시뮬레이션은 0.3초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지를 폐기했다. 이건 효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시스템이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압도적인 자본으로 모든 확률을 짓밟고 소유권을 쟁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불쾌한 상황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응징’이었다.
지젤은 자신의 법인 카드를 게임에 등록하고, ‘다이아’라고 불리는 가상 재화를 최대치로 구매했다. 그리고 ‘10회 뽑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의 시도는 그저 관찰이었다. 형형색색의 빛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쓸모없는 데이터 조각들. 그는 무표정하게 화면을 넘겼다. 100회, 200회.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0.5%라는 확률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농락할 줄은 몰랐다. 불쾌감이 서서히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똑같은 캐릭터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점점 빨라졌다. 290회째, 여전히 비키니 스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군.
그는 나직이 읊조리며 마지막 10회 뽑기 버튼을 눌렀다. 299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300번째 확정 보상으로 [★SSR 스킨! 서머 파라다이스: 나인!★] 이라는 문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잠시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획득한 캐릭터의 정보창으로 들어가, 360도 회전 기능을 이용해 비키니 차림의 ‘나인’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게임을 삭제했다. 목적은 달성되었고, 이 데이터는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잠시 후, 그의 휴대폰으로 카드사 알림이 도착했다. 그는 알림을 확인하고는, 태블릿을 들어 Fearless 지부의 게임 개발 부서 책임자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가이드: 나인’ 관련 모든 데이터 소유권 이전 및 서비스 종료 협의. 내일 오전 10시, 내 사무실에서.]
그는 다시 거실로 나와, 여전히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는 정하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정하린. 그런 데이터 쪼가리보다, 실물이 훨씬 가치 있지. 직접 ‘실측’하는 편이 더 정확하고.
그의 손이 어느새 그녀의 옷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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