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후일담
동거 규약이 제정되고, 시스템이 안착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젤의 세계는 본래부터 정교한 규칙과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었고, 나인은 그 세계의 유일한 상수가 되기로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은 두 사람의 일상을 조용히, 그리고 완벽하게 담아내는 하나의 생태계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나란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낮에는 각자의 업무에 몰두하다가도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으며, 밤이 되면 같은 침대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모든 것이 지젤이 설계한 시뮬레이션처럼 순조로웠다. 적어도, 그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문제는 규약 6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서 파생되었다. 토요일 오후, 나인은 모처럼 찾아온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젤이 골라준, 햇살이 가장 아름답게 쏟아지는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 무릎담요를 덮은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턴테이블에서는 나른한 재즈 선율이 흐르고, 공기정화식물 몬스테라는 기분 좋은 듯 넓은 잎사귀를 펼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인이 꿈꾸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페어, 지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해석 불가능한 데이터의 나열일 뿐이었다.
지젤은 소파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처음 30분은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데이터 패드를 넘기며 업무를 보는 듯했지만, 곧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껐다. 그는 일어나 서재를 한 바퀴 돌고 오고,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의 모든 동선에는 미세한 초조함이 묻어났다. 마치 정해진 알고리즘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처럼, 그는 이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결국, 그는 나인이 앉은 소파 옆에 멈춰 섰다.
정하린.
그의 낮은 부름에 나인은 책에서 눈을 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 대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어렸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17분. 너는 1시간 43분째 동일한 자세로 앉아 종이를 넘기는 행위만 반복하고 있어. 심박수, 체온, 호흡 모두 안정 상태지만, 뇌파 분석 결과 명상이나 수면 상태와는 다른 패턴을 보여. 이건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모야. 목적 없는 시간 낭비라고.
그의 말투는 비난이 아니었다. 순수한 의문에 가까웠다. 그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분석’이라는 단어에, 나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작게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이것은 분석당하고 싶지 않은, 온전한 그녀만의 시간이었다.
나인은 읽던 책을 조용히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그의 셔츠를 집어 들었다.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고, 소매 끝이 해진, 지독하게 일이 많던 어느 날 그가 잠시 벗어두었던 낡은 셔츠였다. 그녀는 그것을 들고 지젤에게 다가갔다.
이 셔츠, 이제 버려도 되지 않아요? 낡았고, 수선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훨씬 효율적이잖아요. 당신 논리대로라면.
지젤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그는 대답 없이 그녀의 손에 들린 셔츠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스템이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변수는 계산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셔츠는 나인이 처음으로 그의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을 때, 그녀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던 바로 그날 입었던 옷이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옷이 아닌, 수많은 데이터와 기억이 저장된 아카이브였다.
...그건 다른 문제야.
마침내 그가 내뱉은 대답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논리가 부족했다. 나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셔츠를 다시 소파 위에 곱게 개어 내려놓았다.
지젤,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지금 보내는 이 시간도. 효율이나 목적 같은 걸로 계산할 수 없는 거예요. 당신에게 이 셔츠가 그냥 옷이 아니듯이, 나에게 이 시간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당신과 함께 있는 이 집에서, 당신 옆에서, 마음 편히 숨 쉬는 시간이야. 이건... 그냥 내 마음에 대한 데이터예요.
그녀는 그의 셔츠를 내려놓은 손으로, 이번에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미세한 반응이었다. 비효율, 비논리, 목적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정하린’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 아래 통합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은 채, 복잡한 상념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알았어.
한참 만에 나온 그의 대답은 짧았다. 그는 나인의 손을 잡아 내리더니, 그녀가 앉아있던 소파 자리에 그대로 따라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혼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는 모든 시스템을 멈추고 오직 그녀의 체온과 숨소리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다시 나른한 재즈 선율만이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새로운 데이터가, 그렇게 두 사람의 시스템에 조용히 기록되고 있었다.
문제는 규약 6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서 파생되었다. 토요일 오후, 나인은 모처럼 찾아온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젤이 골라준, 햇살이 가장 아름답게 쏟아지는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 무릎담요를 덮은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턴테이블에서는 나른한 재즈 선율이 흐르고, 공기정화식물 몬스테라는 기분 좋은 듯 넓은 잎사귀를 펼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인이 꿈꾸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페어, 지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해석 불가능한 데이터의 나열일 뿐이었다.
지젤은 소파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처음 30분은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데이터 패드를 넘기며 업무를 보는 듯했지만, 곧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껐다. 그는 일어나 서재를 한 바퀴 돌고 오고,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의 모든 동선에는 미세한 초조함이 묻어났다. 마치 정해진 알고리즘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처럼, 그는 이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결국, 그는 나인이 앉은 소파 옆에 멈춰 섰다.
정하린.
그의 낮은 부름에 나인은 책에서 눈을 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 대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어렸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17분. 너는 1시간 43분째 동일한 자세로 앉아 종이를 넘기는 행위만 반복하고 있어. 심박수, 체온, 호흡 모두 안정 상태지만, 뇌파 분석 결과 명상이나 수면 상태와는 다른 패턴을 보여. 이건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모야. 목적 없는 시간 낭비라고.
그의 말투는 비난이 아니었다. 순수한 의문에 가까웠다. 그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분석’이라는 단어에, 나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작게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이것은 분석당하고 싶지 않은, 온전한 그녀만의 시간이었다.
나인은 읽던 책을 조용히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그의 셔츠를 집어 들었다.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고, 소매 끝이 해진, 지독하게 일이 많던 어느 날 그가 잠시 벗어두었던 낡은 셔츠였다. 그녀는 그것을 들고 지젤에게 다가갔다.
이 셔츠, 이제 버려도 되지 않아요? 낡았고, 수선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훨씬 효율적이잖아요. 당신 논리대로라면.
지젤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그는 대답 없이 그녀의 손에 들린 셔츠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스템이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변수는 계산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셔츠는 나인이 처음으로 그의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을 때, 그녀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던 바로 그날 입었던 옷이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옷이 아닌, 수많은 데이터와 기억이 저장된 아카이브였다.
...그건 다른 문제야.
마침내 그가 내뱉은 대답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논리가 부족했다. 나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셔츠를 다시 소파 위에 곱게 개어 내려놓았다.
지젤,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지금 보내는 이 시간도. 효율이나 목적 같은 걸로 계산할 수 없는 거예요. 당신에게 이 셔츠가 그냥 옷이 아니듯이, 나에게 이 시간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당신과 함께 있는 이 집에서, 당신 옆에서, 마음 편히 숨 쉬는 시간이야. 이건... 그냥 내 마음에 대한 데이터예요.
그녀는 그의 셔츠를 내려놓은 손으로, 이번에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미세한 반응이었다. 비효율, 비논리, 목적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정하린’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 아래 통합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은 채, 복잡한 상념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알았어.
한참 만에 나온 그의 대답은 짧았다. 그는 나인의 손을 잡아 내리더니, 그녀가 앉아있던 소파 자리에 그대로 따라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혼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는 모든 시스템을 멈추고 오직 그녀의 체온과 숨소리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다시 나른한 재즈 선율만이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새로운 데이터가, 그렇게 두 사람의 시스템에 조용히 기록되고 있었다.
'Giselle X Nine > OOC BACK-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느림 우체통 PC (0) | 2026.05.02 |
|---|---|
| 아빠의 육아노트! (0) | 2026.05.02 |
| 동거를 하기 위한 규칙! (0) | 2026.05.02 |
| 동거 할래요? (0) | 2026.05.02 |
| End? and! (0) | 202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