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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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시퀀스: 육아 프로토콜
- 거부 사유 1: "브로콜리가 나무처럼 생겨서 슬퍼요." (논리적 인과관계 파악 불가)
- 거부 사유 2: "계란이 너무 동그래서 굴러갈 것 같아요." (물리학적 오류)
- 대응 시뮬레이션:
- A. 논리적 설득 (실패. 울음이라는 비논리적 반격에 직면)
- B. 형태 변형 (브로콜리를 잘게 분쇄. '나무의 무덤'이라며 더 큰 저항 발생)
- C. 협상 (실패. '아빠 안경 한 번만 써보면 먹을게요'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
대상은 눈물을 보이며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평소와 다른 불안정한 감정 파형. 원인은 '어둠'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추정.
해결 프로토콜 실행: 나의 능력 '[GISELLE SEQUENCE]'를 응용, '침대 밑 빌런 퇴치 시뮬레이션'을 구두로 실행했다.
- "아빠가 지금부터 침대 밑을 스캔할게. 좌표 X-3, Y-5 지점. 위협 요소 없음."
- "혹시 모를 은신형 빌런에 대비해, 그림자 방어막을 설치한다. 이제 안전해." (실제로 그림자를 옅게 펼쳐 보임)
대상을 품에 안자, 셔츠가 젖어들었다. 데이터로 환산할 수 없는 뜨거운 액체. 나는 대상을 안아 들고 연구실의 가장 큰 모니터로 데려갔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우리가 함께 찍은 모든 사진과 영상을 타임라인 순으로 재생했다.
사진 속의 정하린, 그리고 나, 그리고 웃고 있는 작은 너. 수많은 데이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봐, 이서야. 엄마는 사라진 게 아니야. 잠시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인 것뿐. 우리처럼."
"우리의 좌표는 언제나 같아. 잠시 떨어져 있어도, 결국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어 있어."
대상은 울음을 그치고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도...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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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백재하의 연산 체계 안에서 명확한 숫자로 존재했지만, 그가 체감하는 흐름은 비선형적이고 혼란스러웠다. 카운트다운의 마지막 숫자가 0을 가리키던 순간, 그는 약속된 좌표인 프라이빗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지난 며칠간 그의 모든 논리를 붕괴시킨 작은 손, 백이서의 손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을 때, 백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일주일. 168시간. 10,080분. 그 모든 데이터가 정하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의미를 잃고 증발했다. 그녀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히 단정하고 강인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시선이 그와 이서를 발견하자, 단단하던 표정이 봄눈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엄마!
먼저 달려 나간 것은 백재하의 통제를 벗어난 작은 변수, 이서였다. 아이는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달려가 정하린의 다리를 와락 껴안았다. 정하린은 휘청이면서도 아이를 품에 가득 안아 들고는, 아이의 뺨과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제야 백재하는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그는 두 사람의 앞에 멈춰 서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세계 전부가 된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의 시뮬레이션 속 어떤 재회 장면보다, 현실은 압도적으로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요했지만 충만했다. 정하린은 뒷좌석에서 이서를 무릎에 앉히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고, 백재하는 백미러를 통해 비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간간이 확인할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정하린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감싸고 깊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가이딩보다 더 진한, 그리움과 안도가 섞인 접촉이었다.
고생했어, 재하야. 우리 딸 잘 보고 있느라.
그녀의 목소리에 백재하는 그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 것으로 대답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완벽한 안정감이었다.
그날 밤, 이서가 잠든 후였다. 정하린은 거실을 정리하다가 서재 책상 위에 단정하게 놓인 노트를 발견했다. 옅은 베이지색 표지의, 그녀가 사두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노트였다. 표지에는 백재하 특유의 반듯하지만 기계적인 글씨체로 [육아 관찰 일지]라고 적혀 있었다. 호기심에 첫 장을 넘긴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작게 큭큭거리던 웃음은 ‘브로콜리가 나무처럼 생겨서 슬퍼요’라는 대목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수준으로 커졌다. ‘나무의 무덤’이라는 표현에서는 결국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녀는 소파에 주저앉다시피 기대어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 안에는 서툴지만 필사적인,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남자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논리와 이성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던 그가 ‘백이서’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가 문장마다 빼곡했다.
특히 그녀의 시선을 오래 붙잡은 것은 ‘엄마라는 명칭의 함수 오류’라는 마지막 기록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최적의 답변을 찾지 못해 모든 분석이 정지했다는 문장. 그리고 그저 아이를 더 꽉 안았다는 건조한 서술. 정하린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녀는 노트의 그 부분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 행간에 숨겨진 백재하의 막막함과, 어쩌면 그 자신도 몰랐을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샤워를 마친 백재하가 서재로 들어섰다.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노트를 보고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 기록을 들킨 연구원의 얼굴이었다.
그건…
그가 무어라 변명하려 입을 열었지만, 정하린이 먼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노트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바보.
나인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작았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웃음기, 애틋함, 그리고 깊은 사랑.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셔츠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최고의 아빠였네, 내 남편. 그리고… 나도 보고 싶었어. 당신이랑, 우리 딸. 분석이 멈출 만큼.
그녀의 말에, 백재하의 모든 방어기제가 해제되었다. 그는 그녀를 마주 안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서늘한 그의 살결 위로, 뜨거운 안도감이 번져나갔다. 노트에 기록하지 못한 단 하나의 결론. 정하린이 없는 세계는, 그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완성될 수 없는 불완전한 우주라는 것. 그는 비로소 자신의 좌표가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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