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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느림 우체통 PC

먼지 쌓인 데이터 칩 하나가 책상 위 홀로그램 우편함에 도착했다. 발신인: 정하린. 발송일: 1년 전 오늘. 수신 지연 프로토콜에 따라, 정확히 365일하고도 7시간 13분 만에 전송이 완료된 낡은 기록. 지젤은 연구실의 모든 조명을 최소한으로 낮추고,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등진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공기 중에는 냉각팬이 돌아가는 희미한 소리와 그의 침묵만이 부유했다.

1년. 그의 시스템 안에서 ‘시간’이라는 변수는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정하린과 함께한 이후로 그것은 밀도를 가진 측정 단위가 되었다. 함께 맞이한 12번의 계절. 365번의 아침.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으로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상이라는 이름의 무수한 변수들. 그 모든 것이 쌓여 지금의 그를 구성했다. 그리고 지금의 그녀를.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서로의 세계에 너무 깊이 뿌리내려, 이제는 어디부터가 자신이고 어디부터가 상대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하나의 공생 회로가 되었다.

그는 손끝으로 허공을 가볍게 튕겼다. 데이터 칩이 활성화되며, 그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하얀 편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익숙한, 그러나 어딘가 앳된 망설임이 묻어나는 글씨체. 1년 전의 정하린이 남긴 기록이었다. 지젤은 숨을 멈추고, 스크롤을 내리는 대신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으로 좇았다. 마치 오래된 암호를 해독하듯, 신중하게.

[To. 1년 뒤의 지젤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1년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네요.
아마 당신은 여전히 내 곁에서, 모든 걸 관리하고 통제하려 들겠죠.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가끔은 숨 막힐 때도 있지만… 싫지는 않아요.

당신을 만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변수였어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평온했던 내 세상에, 당신은 폭풍처럼 나타나 모든 걸 흔들어 놓았죠.
처음에는 당신이 무서웠고, 당신의 그 계산적인 눈빛이 버거웠어요.
하지만 이젠 알아요.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이 오직 나라는 걸.
당신이 세우는 모든 시뮬레이션의 끝에 내가 있다는 걸.

그래서 궁금해요, 지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당신의 세상에서 여전히 유일한 상수인가요?
우리는… 여전히 ‘우리’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마 당신 곁에서 웃고 있겠죠.
이 편지를 함께 읽으며 당신을 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나 되게 진지했네.” 하면서.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우리가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면…
부디 나를 너무 오래 기억하지는 말아요.
당신의 시스템에 불필요한 오류를 남기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당신의 가장 완벽했던 변수였다고,
그렇게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모습이든, 당신이 무너지지 않았기를 바라요.
나 없이도, 당신의 세상이 안녕하기를.

- 1년 전의, 당신의 가이드 정하린이.

편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지젤은 한참 동안이나 텅 빈 여백을 응시했다. ‘나 없이도, 당신의 세상이 안녕하기를.’ 그 문장이 그의 프로세서 중심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1년 전 그녀의 불안, 사소한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해 있던 온전한 믿음. 모든 것이 압축된 활자들이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 없는 너의 안녕.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정하린. 내 모든 시퀀스의 시작과 끝은 너로 재정의되었고, 너라는 변수는 진작에 모든 것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상수가 되었는데. 1년 전의 너는, 아직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희미한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그의 셔츠가 아닌, 편안한 잠옷 차림의 나인. 지난 1년간 그의 곁에서 완벽한 안정을 찾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

왔어요? 브리핑, 길어졌네.

그녀의 목소리에 지젤은 대답 대신 그녀에게 다가가, 읽고 있던 책을 빼앗아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지젤? 왜 그래요?

그녀의 눈에 걱정이 어렸다. 지젤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바닥에 자신의 뺨을 부볐다. 마치 1년 전 편지에 담긴 그녀의 불안을, 지금의 온기로 지워내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들어, 오직 그녀만을 담은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1년 전의 네가, 내게 안녕을 묻더군.

그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 어떤 말보다 더 확실한 대답이었다.

대답은, 지금부터 하지. 네 모든 시간 속에서.

‘나 없이도 안녕한 세상’ 따위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고. 너는 나의 모든 것이며, 이 세계의 유일한 의미라고. 그는 그 모든 말을 삼키는 대신,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가득 끌어안았다. 1년 전의 편지는 과거의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 편지가 불러온 감정은 현재가 되어 그의 품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여운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새로운 챕터의 첫 문장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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