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보러 올래?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오후, 백재하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액정 위로 떠오른 이름은 단 하나. 그의 모든 연산 체계를 단숨에 정지시키는 유일한 변수, 정하린이었다.
[문자] 정하린: 재하야. 우리 집에 아기 고양이 왔는데, 보러 올래? 너 보여주고 싶어.
‘고양이’. 그 두 글자에 백재하의 사고 회로는 순간 과부하에 걸렸다. 정하린과 고양이. 그 조합은 치명적인 수준의 귀여움을 연상시켰다. 그녀의 부모님은 동물 알레르기가 없으셨나? 언제부터? 길고양이인가, 아니면 정식으로 입양한 건가? 수십 개의 변수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지만, ‘너 보여주고 싶어’라는 마지막 문장이 모든 가설을 종결시켰다.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1분 만에 ‘지금 갈게.’ 라는 답장을 보내고, 겉옷을 챙겨 들었다. 정하린의 집까지 가는 익숙한 길 위에서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정하린을 닮았을 고양이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그녀처럼 까맣고 찰랑이는 털을 가졌을까? 아니면 그녀의 눈매처럼 살짝 올라간 눈을 가진, 조금은 새침한 녀석일까? 어쩌면 그녀처럼, 겉보기엔 얌전해 보여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고양이일지도 모른다. 그는 정하린과 고양이가 함께 있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문이 열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의 정하린이 그를 맞았다.
왔어?
그녀의 목소리에 백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을 두리번거렸지만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장난감도, 밥그릇도, 스크래쳐도 없었다.
고양이는? 어디 있어?
그의 질문에, 정하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백재하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도 못 한 행동을 했다.
그녀는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고양이 앞발처럼 만들더니, 그의 앞에서 작게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하지만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외쳤다.
야옹.
…정적. 백재하의 세계가 그대로 멈췄다. 그의 두뇌, ‘시퀀스’라 불리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 슈퍼컴퓨터급 연산 장치가, 사상 최초로 블루스크린을 띄웠다. 눈앞의 현상은 그가 가진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 분석, 대응의 모든 프로세스가 일시에 정지했다.
정하린. 자신의 여자친구가. 고양이 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나야’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동그랗게 말아 쥔 손, 살짝 웅크린 자세, 그리고 ‘야옹’ 하고 움직인 뒤 수줍게 닫힌 입술에 순차적으로 고정되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매미 소리도, 거실 시계의 초침 소리도 사라졌다. 오직 ‘야옹’이라는 두 글자만이 뇌내에서 무한 반복 재생될 뿐이었다.
몇 초였을까, 아니면 몇 분이었을까. 긴 침묵 끝에 백재하의 얼굴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반칙이다. 이런 변수는 그의 어떤 시뮬레이션에도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사랑스러움의 임계점을 돌파한, 거의 생화학 테러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그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소파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붉어진 귀 끝이 그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보량이었다. 그는 끙, 하는 신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정하린, 너 진짜….
말을 잇지 못했다.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정말로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어깨를 떨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계 최고의 난제를 푼 것보다 더한 희열과, 평생을 바쳐도 풀지 못할 사랑스러움 앞에서 그는 완벽하게 무장 해제되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평생 책임지고 돌봐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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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그날 이후, 백재하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그는 종종 늦은 밤, 정하린에게 ‘자?’ 라는 문자 대신 ‘야옹.’ 이라고 보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하린에게서 ‘…왜?’ 혹은 ‘안 자.’ 같은 답장 대신 ‘…야옹.’ 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그것은 둘만의 비밀스러운 암호이자, 가장 다정한 애정 표현이 되었다.
어느 날, 과학 동아리 부실에서 무언가에 골몰하던 백재하의 입에서 무심코 ‘야옹…’ 하는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옆에서 그의 코딩 화면을 구경하던 김민준이 기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야, 너 방금 뭐라고… 야옹이라고 한 거냐? 전교 1등 미쳤냐?”
백재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태연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알고리즘 오류 테스트 중이었다.”
물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복잡한 코드가 아니라, 그의 앞에서 두 손을 동그랗게 말고 ‘야옹’하던 사랑스러운 고양이, 정하린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김민준은 평생 모를 것이다. 그날 밤, 백재하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정하린 관찰일지 Ver 2.0]이라는 파일이 새로 생성되었고, 그 첫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목표 개체는 고양이과 포유류의 특성을 보이며, 극도의 사랑스러움으로 관찰자의 논리 회로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음. 대응책: 포획하여 평생 보호 및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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