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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지젤의 망한 프로포즈 (일까 과연)

모든 계산은 완벽했다. 오차율 0.001% 미만. ‘정하린에게 청혼한다.’ 이 하나의 명제를 위해, 백재하는 그의 능력 ‘지젤 시퀀스’를 사상 가장 사적인 영역에 동원했다. 지난 72시간 동안, 그는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시뮬레이션했다. 레스토랑 예약 확인, 반지 케이스의 마찰계수, 당일의 습도와 풍향, 심지어는 그녀가 선택할 메뉴의 칼로리까지. 그의 시나리오 속에서, 그녀는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부서지는 창가에 앉아, 그의 계산된 고백에 놀라면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며 ‘예스’라고 답할 확률이 99.8%였다.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시뮬레이션 헤드셋 속에서 단 한 번도 그려지지 않았던, 악보 없는 프리재즈였다.

 

시작은 레스토랑이었다. 그가 반년 전, ‘Fearless’의 최상위 보안 등급을 이용해 강제로 할당받았던 프라이빗 룸은, 어이없게도 건물 전체의 가스 배관 문제로 폐쇄되었다. 매니저는 백 번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뇌리에선 이미 ‘PLAN B’가 실행되고 있었다. 괜찮았다. 그의 두 번째 계획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리버파크에서의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드론 수백 대가 밤하늘에 ‘Marry Me, NINE’을 수놓는, 조금은 통속적이지만 실패할 리 없는 플랜. 그러나 그들이 공원으로 향하는 길, 갑작스러운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다. 하늘은 시꺼먼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퍼부었고, 드론 업체에선 ‘불가항력’ 통보가 날아왔다. 그의 시스템 HUD 위로 붉은색 ‘ERROR’ 경고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백재하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아직 마지막 카드가 남아있었다. 집. 그들의 공간.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장소. 그는 빗속을 뚫고 집으로 향하며, 재빨리 시퀀스를 재구성했다. 거실의 조명을 조절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시키고, 무릎을 꿇는다. 그래, 이것이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진실된 경로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젖은 몸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를 맞이한 것은 로맨틱한 어둠이 아닌, 암흑과 정적. 그리고 타는 냄새였다. 과부하된 차단기가 내려가 집 전체가 정전되었고, 그가 아침에 켜놓고 나간 아로마 램프가 과열되어 시커먼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 모든 회로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삐- 하는 이명과 함께, 완벽하게 구축했던 수만 개의 시나리오가 한꺼번에 잿더미로 변했다. 최악이었다. 그는 멍하니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당황스러움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든 반지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이 상황에서 이걸 꺼내는 건, 코미디를 넘어 비극에 가까웠다.


...망했군.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계산된 고백이 아닌, 처참한 현실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 우스꽝스러운 재난의 연속 앞에서, S급 센티넬의 능력도, 천재 과학자의 두뇌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는 그저 비에 쫄딱 젖은 채 정전된 집 안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근사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계산을, 계획을, 완벽에 대한 강박을.


정하린.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빗물에 젖어 축축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게 울렸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엉망인 이 상황의 한가운데서, 그녀의 젖은 두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좌표였다.


내가 지난 며칠간, 너에게 어떻게 청혼할지 수만 번쯤 시뮬레이션했어. 최고의 장소, 완벽한 타이밍, 가장 감동적인 말들. 단 하나의 오차도 없는, 그런 완벽한 순간을 너에게 선물하고 싶었거든.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엉망이 된 집, 타는 냄새, 어둠. 이것이 그의 완벽한 계획이 마주한 현실이었다.


근데 보다시피, 전부 망했어. 레스토랑도, 드론도, 심지어 집까지도. 내 능력은 이런 일상적인 변수 앞에선 아무 쓸모도 없더군. 내가 계산한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오늘 아주 처절하게 깨달았어.

그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서 작게 반짝였다.


그래서, 이제부턴 계산 같은 거 안 해. 그냥 말할게. 나는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정하린. 넌 내 모든 시퀀스를 멈추게 하는 유일한 버그고, 동시에 내 꺼져가던 세상을 재부팅시킨 유일한 명령어였어. 너를 처음 본 5년 전, 폐허가 된 도서관에서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경로의 끝은 항상 너였어.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깎아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 하지만 그는 케이스를 열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든 채, 그의 모든 진심을 목소리에 실었다.


그러니까, 내 세상의 유일한 변수이자 유일한 상수가 되어줘. 내 모든 예측 불가능한 내일의,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행복이 되어주라. 나와 결혼해 줘, 하린아.

암흑 속에서, 그는 무릎 꿇는 것조차 잊은 채 그저 서서, 세상 가장 솔직한 눈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계산된 결과가 아니었다. 오직 심장이 내뱉는,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 오늘, 이 말하려고 다 준비 했던 거지?

나인은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 내 대답은...

나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를 향해 운을 천천히 띄웠다.

싫...

그의 세상이 멈췄다. ‘싫…’이라는, 고작 한 음절의 파동이 고막을 통과해 그의 모든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순간, 시간은 그 의미를 잃었다. 암흑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제는 그의 세계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완벽하게 실패한 계획, 엉망이 된 집, 그리고 이 처참한 고백까지. 그 모든 재난을 감수하게 했던 단 하나의 희망이,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저 짧은 단어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그의 시스템은 그 어떤 오류 코드도 출력하지 못했다. 그저, 정지. 완벽한 정지였다.

 

그녀를 꽉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그의 동공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대답을 갈망하며 타오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텅 빈 심연만이 남았다. 그는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장난기 어린 그 표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뇌는 오직 ‘거절’이라는 데이터를 최우선으로 처리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후속 시스템의 연쇄 붕괴를 감당하고 있었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 툭,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래.

목소리는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채 흘러나왔다. 메마르고,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그저 공기의 진동일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의 모든 계산, 모든 변수, 모든 진심이 향했던 종착지가 이런 폐허일 줄이야.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기대를 품었는지 깨달았다. 예측 불가능한 행복? 결국 예측 가능한 불행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알았어. 없던 일로...

그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엉망이 된 이 밤을 끝내려 했을 때였다. 자신의 손을 다시 단단히 붙잡아오는 힘과 함께, 그녀의 명백한 다음 말이 들려왔다.


...다고 말할 줄 알았지? 내 대답은, 당연히 ‘예스’야, 백재하.

순간, 멈췄던 그의 세상이 급작스럽게 재부팅을 시작했다. ‘예스’라는 단어가 ‘싫다’는 데이터를 덮어쓰고, 강제로 시스템을 복구시켰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방금 전 느꼈던 냉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너.

그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는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도감, 분노, 허탈함,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한데 뒤엉켜 그의 내부를 휘저었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부서져라 꽉 잡고, 그대로 제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비에 젖은 두 몸이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지금 나 놀린 거야?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지만, 그 안에는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그녀의 턱을 붙잡아 들어 올리고, 그 장난기 어린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꺼졌던 불꽃이 다시 위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여자는, 방금 지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남자를 다시 끌어올려 놓고, 이렇게 태평하게 웃고 있다.


정하린, 너 정말... 죽고 싶어?

 

 

나인은 그의 품에 거칠게 안겨 그를 올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잡힌 손을 꼼지락 움직였다.

죽고 싶지는 않고... 반지는 조금 끼고 싶은 거 같은데.

그의 흉흉한 눈빛 아래에서도, 그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듯, 태연하게 반지를 끼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 한마디가 방금 전까지 들끓던 지젤의 분노를 어이없을 만큼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수만 가지 보복의 시뮬레이션이 ‘반지’라는 단어 하나에 일제히 멈춰 섰다. 그녀의 턱을 붙들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고, 대신 허리를 감아 안은 팔에 더욱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빈틈 하나 없이 그에게 밀착된 몸. 그는 허, 하고 기가 막힌 숨을 내뱉었다.


반지...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 단어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전부를 걸고 건넸다가, 처참하게 거절당했다고 믿었던 그 증표.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는 여전히, 자신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정하린의 얼굴이 있었다. 모든 혼란의 원인이자, 유일한 해답.


그걸 지금 받고 싶다고? 방금 내 심장을 멈췄다 살려놓고, 그런 말이 나와?

그는 그녀를 품에 가둔 채, 어둠 속에서 한 걸음, 벽 쪽으로 그녀를 밀어붙였다. 쿵, 하고 그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의 뜨거운 몸과 벽의 냉기 사이에 갇힌 그녀는 이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괘씸해서라도 못 줘. 아니, 안 줘.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거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순수한 분노가 아닌, 되찾은 안도감과 짙은 소유욕이 뒤섞여 있었다.


대신, 평생 못 빼게 해줄게. 네 손가락에 아주 박아 넣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 장난친 거, 지금부터 몸으로 갚아, 정하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다른 손으로 옮겨 쥔 뒤,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질문도, 허락도 없는, 오직 징벌과도 같은 키스였다. 비에 젖어 차가웠던 입술이 그의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잘게 물었다 놓으며, 저항하려 꼼지락거리는 손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벽에 눌렀다. 방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물건이었어야 할 반지 케이스가, 이제는 그들의 입맞춤 사이에서 차갑게 부딪히며 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숨 막히는 키스가 어둠 속에서 이어졌다. 그의 혀는 마치 길을 잃었다가 제자리를 찾은 맹수처럼, 그녀의 입 안을 거칠게 헤집고 다녔다. 징벌처럼 시작된 입맞춤은 이내 모든 것을 녹일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 사이로 전해지는 그의 심장 소리가, 마치 폭주 직전의 엔진처럼 격렬하게 고동쳤다. 벽에 눌린 손목이 버둥거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미약한 저항이 그의 소유욕에 불을 지피는 듯했다.

 

한참 만에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뗐다. 하지만 거리는 여전히 가까웠다. 그의 이마가 그녀의 이마에 닿았고, 짙은 흑안이 지척에서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의 잔재와 함께, 집요하고 뜨거운 욕망이 선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도 장난 같아?

목소리는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대신 그녀의 젖은 뺨을 감쌌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든 반지 케이스를 그녀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찰칵, 하고 케이스가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둠 속에서도, 그가 직접 깎고 설계한 반지가 희미한 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였다.


이게 뭔지 알지. 네가 거절할 수도 있었던 내 세상 전부. 네가 장난으로 걷어찰 뻔했던 내 남은 인생.

그는 그녀의 왼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약지에 반지를 밀어 넣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부드러운 배려도 없는, 마치 낙인을 찍는 듯한 행위였다. 차가운 금속이 그녀의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는 감각이 생생했다.


이제 못 빼. 빼려고 하면, 손가락을 부러뜨려서라도 다시 끼울 거야. 도망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다시 이 자리로 끌고 올 거고. 내 허락 없이는, 넌 이 반지 절대 못 빼. 알았어, 정하린?

그는 반지가 끼워진 그녀의 손을 들어, 그 손등에 짧고 강하게 입을 맞췄다. 맹세이자, 경고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아까와는 다른, 더 깊고 집요한 키스를 시작했다. 이제 징벌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온전한 그의 소유가 된 그녀를 확인하고, 탐하고, 삼켜버릴 시간이었다. 그의 한 손이 그녀의 젖은 셔츠 밑으로 파고들어, 차가운 맨살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 NPC TMI: 그는 약혼반지를 '수갑'의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 낙서 한 줄: 내 여자 손가락이 제일 예쁘네. 반지가 주인을 잘 만났어.

◦🔔: [PROPOSAL STATUS] 최종 승인 완료. '정하린과의 결혼' 프로젝트, 지금부터 공식 개시. 모든 관련 프로토콜의 최우선순위로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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