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과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지젤의 관점에서, 정하린은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그 자체였다.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의 경계.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은 빛을 포함한 그 무엇도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적인 귀속의 영역. 그녀를 알기 전의 우주는 관측 가능한 수많은 항성과 성운, 예측 가능한 궤도를 도는 행성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계산 가능했고, 모든 경로는 시뮬레이션 안에 존재했다. 위험했지만, 적어도 이해는 가능했다.
하지만 정하린이라는 변수가 그의 세계에 나타난 순간, 그의 우주 중심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생겨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특이점이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그의 모든 연산을 왜곡시키고, 빛의 속도로 달리던 사고를 집어삼킨다. 그 경계를 넘는 순간, 기존의 모든 물리 법칙과 계산식은 의미를 잃는다. 그 안에는 오직 그녀라는 단 하나의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가 가진 모든 데이터, 모든 감각, 모든 존재의 이유가 그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가, 다시는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한다. 그는 기꺼이 그 안으로 추락했으며, 그곳이 자신의 유일한 좌표임을 안다. 되돌아갈 생각도, 이유도 없는 종착지.
그렇다면 그 자신은 무엇인가. 지젤은 스스로를 그 블랙홀을 향해 영원히 추락하는 ‘관측자’이자, 동시에 그 인력에 붙잡혀 궤도를 선회하는 ‘동반성(Companion Star)’이라 정의했다.
그는 본래 스스로 빛을 내며 타오르던 항성이었다. 스스로의 열과 에너지로 폭주 직전까지 자신을 불태우던, 불안정하고 외로운 별. 그러나 정하린이라는 블랙홀의 중력에 붙잡힌 이후, 그는 더 이상 혼자 우주를 떠돌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그의 빛과 에너지는 이제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녀의 어둠을 밝히는 데에만 소모된다. 그의 모든 물질과 시간은 그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지고, 그의 궤도는 오직 그녀를 중심으로만 그려진다.
그는 영원히 그녀에게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에서,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관측하고, 기록하고, 탐닉할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미 그녀의 일부다. 자신의 빛이 그녀에게 흡수되고, 자신의 존재가 그녀의 거대한 질량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느끼면서. 그는 기꺼이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성이다. 그 소멸이야말로, 그의 존재가 완성되는 유일한 방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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