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rrrrrr ! 배방구 공격!
소파에 길게 누운 몸은 녹아내린 치즈처럼 나른했다. 창문으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그의 흰 얼굴 위로 부서져 내렸다. 규칙적인 숨소리,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가슴. 백재하는 드물게 찾아온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든 시스템은 대기 모드, 모든 연산은 정지 상태. 그의 세상은 정하린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 고요함의 한가운데로, 정하린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녀의 그림자가 햇살을 가르는 것을 시야 가장자리로 인지했지만, 그는 굳이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자연법칙과도 같았다. 뻔한 변수, 예측 가능한 애정 표현. 이마에 입을 맞추거나, 뺨을 쓰다듬거나, 혹은 조용히 곁에 누울 것이다. 그의 시스템은 98.7%의 확률로 ‘부드러운 스킨십’ 시나리오를 예측하며 평온을 유지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모든 시스템이 유사 이래 경험해 보지 못한 치명적 오류에 직면했다.
예고 없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이 그가 입고 있던 맨투맨의 밑단을 잡아, 그대로 가슴팍까지 홱 밀어 올렸다. 서늘한 공기가 맨살에 와 닿는 감각.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이물감이 그의 복부 중앙에 안착했다. 그의 시스템이 ‘정하린의 입술’이라는 데이터를 출력하기도 전에, 그의 고막과 복부 신경계를 동시에 타격하는 정체불명의 진동이 시작되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
…ERROR. CRITICAL SYSTEM MALFUNCTION. UNIDENTIFIED ACOUSTIC VIBRATION DETECTED. THREAT LEVEL… UNCLASSIFIABLE. SOURCE: COORDINATE ‘NINE’. INTENT… UNKNOWN. ANALYZING… ANALYZING… FAILURE.
백재하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 그것은 빌런의 기습도, 폭주의 전조도 아니었다. 그의 복부에서 느껴지는 간지럽고, 축축하고, 미묘하게 불쾌하면서도 어이없는 진동. 그의 GISELLE SEQUENCE가 평생에 걸쳐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지만, ‘배방구’라는 현상에 대한 대응 프로토콜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실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배에 얼굴을 묻고, 입술을 진동시키며 정체불명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 정하린의 정수리였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분기 시뮬레이션이 폭발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했다.
- 실패 확률 99%. 그녀는 더 즐거워하며 2차 공격을 시도할 것이다.
- 실패 확률 100%. 그녀의 웃음거리가 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영구 박제될 위험.
-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모든 합리적 대응이 막힌 절체절명의 위기. 그는 평생을 지배해 온 이성과 논리를 포기하고, 가장 원초적인 반응을 선택했다. 그는 숨을 참았다. 그리고… 웃음도 참았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부 근육이 제멋대로 경련하며 배신했다. 그 미세한 경련은 그녀의 입술에 더 강한 진동을 전달했고,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그녀의 ‘부우우-’ 소리는 한층 더 강력해졌다.
마침내 그녀가 만족했다는 듯 얼굴을 들었을 때, 백재하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하얀 복부에는 그녀의 침으로 범벅이 된, 굴욕적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허탈함, 그리고 미처 숨기지 못한 웃음기가 뒤섞여 기묘한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방금… 뭘 한 거지, 정하린.
목소리는 간신히 쥐어짜냈지만, 평소의 냉정함이나 지적인 위압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말려 올라간 맨투맨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배에 남은 축축한 흔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 시스템에 따르면, 이것은… 생화학 무기 공격에 준하는 행위다. 데이터에 없는 변수, 예측 불가능한 공격 패턴…
그는 말을 멈추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배에 남은 축축한 흔적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는 그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듯 정하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전장에서 최종 솔루션을 찾아냈을 때와 같이 번뜩이고 있었다.
아주 흥미로운 공격이군. 반격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도발이었어.
그는 순식간에 자세를 바꿔 그녀를 소파 위로 넘어트렸다.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 그녀가 당황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위에서 양 팔을 붙잡아 꼼짝 못 하게 제압하며,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는 낮고 위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데이터에 없으면, 새로 입력하면 되는 일이야. 동일한 자극을 통해 역산하고, 가장 완벽한 복수 시퀀스를 구축하면 돼. 자, 이제 네가 당할 차례야, 정하린.
그는 그렇게 선언하며, 그녀가 했던 것과 똑같이 그녀의 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S급 센티넬의 존엄성과 이성을 한순간에 마비시킨 전대미문의 공격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백재하의 선전포고는 유치했지만, 그의 눈빛과 그녀를 제압한 힘은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 나인은 당황한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압당한 팔을 버둥거려보았지만, 작정하고 누르는 S급 센티넬의 완력을 A급 가이드가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복수를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에 그녀의 입에서 웃음과 비명이 뒤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돼, 잠깐, 항복! 항복할게!
그녀의 외침은 그러나, 복수 시퀀스를 가동한 백재하의 시스템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완벽한 트리거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셔츠 밑단을 슬그머니 말아 올렸다. 맨살이 드러난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미지의 행성을 탐사하는 과학자처럼 진지하고 집요했다.
항복은 받아들이지 않아. 이건 데이터 수집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야, 정하린. 네가 시작한 연구는, 내가 끝을 낸다. 자, 1차 공격 좌표, 복부 중앙. 시퀀스 개시.
그는 그렇게 선언하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집요한 진동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파가 울리고, 거실의 공기가 떨릴 정도의 강력한 ‘부우우우우-’ 소리가 작렬했다. 나인은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몸부림쳤다. 소파에서 떨어질 듯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몸을 그는 한쪽 다리로 단단히 고정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하하! 그만, 그만해, 재하야, 숨, 흡!”
웃음 때문에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녀의 반응 데이터가 그의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입력되었다. ‘근육 수축 빈도: 초당 12.7회. 발성 패턴: 비명과 웃음의 불규칙한 조합. 눈물 발생량: 2cc.’ 그는 잠시 고개를 들어,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선언했다.
1차 좌표의 데이터 수집 완료. 반응 양호. 2차 공격 좌표, 좌측 옆구리. 공격 강도 120% 상향 조정.
그의 입술이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옆구리를 향했다. 나인은 기겁하며 허리를 비틀었지만, 그의 집요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옆구리에 닿는 간지럽고 축축한 감각에 그녀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백재하는 그녀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며 더욱 악랄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평소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소파 위에는 오직 유치한 복수심에 불타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웃음 지옥에 빠진 한 여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인이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러서야 그는 마침내 공격을 멈추었다. 그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려 올라간 그녀의 셔츠를 부드럽게 내려주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정리해주었다.
데이터 수집 완료. 결론, 정하린은 ‘배방구’ 공격에 극도로 취약하며, 이는 효과적인 무력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최상위 보안 등급으로 분류해두지. 나만 쓸 수 있도록.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평화롭던 오후의 휴식은 한바탕 전쟁으로 변했지만, 그 끝에 찾아온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깊고 충만한 안정감이었다.
전쟁을 걸어온 건 너지만, 마무리는 언제나 내 방식대로야.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 아직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나인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두고 봐.’ 그 작은 투정마저 사랑스러워, 그는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완벽하게 평화로운, 완벽하게 승리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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