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사진 좀 보내줘
어느 평일 오후,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데이터패드를 보던 정적을 깬 것은 나인이었다. 그녀는 요즘 유행이라는 릴스 챌린지 영상을 지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연인에게 자신의 ‘예쁜/귀여운/웃긴/섹시한/최애’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콘텐츠였다.
“나도 이거 해볼래. 백재하, 네가 가진 내 사진 좀 보내줘. 주제는 이거랑 똑같아.”
지젤은 영상에서 시선을 떼고, 데이터패드를 내려놓은 뒤 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렌즈 너머 짙은 흑안이 흥미롭다는 듯 가늘어졌다.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데이터패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인의 단말기로 알림음과 함께 다섯 개의 파일이 순차적으로 전송되었다. 각 파일의 이름은 [Pretty], [Cute], [Funny], [Sexy], [Favorite] 였다.
1. [Pretty]
사진 속 나인은 그의 연구실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까만 흑발은 소파 팔걸이 아래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얇은 담요는 어깨까지만 아슬아슬하게 덮여 있었다. 평소의 긴장감은 모두 녹아내린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얼굴과 살짝 벌어진 입술은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뺨 위 솜털과 속눈썹 그림자를 금빛 가루처럼 비추고 있었다. 사진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구도였다.
이걸 보낸 이유?
그는 자신의 데이터패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타이핑으로 답장을 보냈다.
- '예쁨'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이 사진은 가장 본질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연산되지 않은, 통제 변수를 벗어난, 존재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형태. 모든 방어기제를 해제한 너의 가장 순수한 데이터. 시끄러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시스템을 멈추게 만드는… 뭐, 그런 거다.
2. [Cute]
두 번째 사진은 지부 식당에서 찍힌 것이었다. 화면 가득 커다란 돈가스를 입에 물고 있는 나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막 튀겨져 나온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물려다가 너무 뜨거웠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두 볼은 음식을 가득 물어 햄스터처럼 빵빵했고, 입꼬리에는 돈가스 소스가 살짝 묻어 있었다. 한 손에는 포크를 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포착되어 있었다.
이걸 보낸 이유?
- 지능과 상황 판단 능력을 갖춘 성체가 뜨거운 음식 앞에서 모든 논리 회로를 정지시키는 순간. 생존 본능과 식욕 사이의 명백한 딜레마. 그 비합리적인 반응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성. 흥미로운 관찰 기록이다. 귀엽군.
3. [Funny]
지젤의 연구실 한가운데, VR 시뮬레이션 장비를 착용한 나인이 허공을 향해 필사적으로 팔을 휘젓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고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잔뜩 찡그린 미간과 꽉 다문 입술이 그녀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아마 거대한 괴수와 싸우고 있었겠지만, 현실의 그녀는 균형을 잃고 뒤뚱거리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진의 배경에는 그 모습을 팔짱 낀 채 흥미롭게 지켜보는 지젤의 그림자가 살짝 비쳤다.
이걸 보낸 이유?
- 가상과 현실의 괴리. A급 가이드 '나인'의 위엄과 눈앞의 허수아비 사이의 간극. 인간의 인지 부조화가 얼마나 흥미로운 신체 반응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샘플. 특히 3초 뒤, 네가 제자리에서 넘어지며 낸 비명은 S급 빌런의 초음파 공격과 맞먹는 파형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 소장 중이다.
4. [Sexy]
사진은 흐릿했다. 초점이 정확하게 맞지 않아 전체적으로 노이즈가 낀 듯한 느낌이었지만, 무엇을 찍었는지는 명확했다. 전투가 끝난 후, 부서진 건물 잔해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인의 모습이었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그녀의 목덜미, 찢어진 전투복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쇄골, 그리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젤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그녀의 그림자가 그의 발밑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이걸 보낸 이유?
- ‘섹시함’은 의도된 노출이나 연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계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발현되는 생(生)의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집중력,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증명. 그 순간의 너는, 그 어떤 빌런보다도 위험하고 매혹적이다. 내 모든 시퀀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변수.
5. [Favorite]
마지막 사진은 뜻밖에도 셀카였다. 그것도 지젤과 나인이 함께 찍은. 사진 속 그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지만, 그의 품에 쏙 안겨 밝게 웃는 나인이 그의 뺨에 입을 맞추는 순간,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살짝 올라가 있었다. 배경은 두 사람이 함께 꾸민 거실이었고, 창밖으로는 따뜻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걸 보낸 이유?
이번에는 타이핑이 아니었다. 지젤은 데이터패드를 소파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사진 속 모습처럼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변수, 통제, 연산, 데이터… 전부 무의미해지는 유일한 순간이니까.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는 사진을 보내달라던 나인의 요청은 이미 잊었다는 듯,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시스템이 기록한 수억 개의 데이터 중, 그가 ‘최애’로 분류한 단 하나의 프레임. 그것은 언제나, 정하린이 그의 곁에서 웃고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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