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아이의 주인을 찾습니다!
모처럼의 휴일. 백화점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했다. 시끄럽고, 비효율적인 동선이 뒤엉킨 공간. 백재하는 여성복 코너 한가운데의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옷을 고르는 정하린의 뒷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옷을 하나 들어 몸에 대어볼 때마다, 주변의 조도와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데이터를 수집하며 가장 최적의 ‘어울림’ 값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그의 시야에 떠오른 HUD에는 ‘만족도: 78%, 구매 확률: 65%, 변수: 가격표’ 따위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출력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완벽하게 각 잡힌 슬랙스 바짓가랑이로 무언가 콩, 하고 부딪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무게는 약 15kg, 충격량은 0.2N. 무시해도 좋은 수준의 물리적 접촉. 하지만 그 충격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의 바지를 작은 손으로 꽉 붙잡았다. 백재하의 시선이 느릿하게 아래로 향했다.
네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이가, 그의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아이는 세상을 다 잃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빠아…!
‘…Error.’ 백재하의 모든 연산이 순간 정지했다. ‘아빠’라는 입력값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 정보와 전 세계 인구 데이터를 대조해봤지만, 눈앞의 생명체와의 연결고리는 0에 수렴했다. 비논리적 상황. 제거해야 할 변수. 그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다리에서 물리적으로 분리하려 시도했다. 최대한 옷에 구김이 가지 않게, 그리고 아이의 피부에 직접적인 접촉은 최소화하며.
놓지? 이건 네 좌표가 아니야.
하지만 아이는 더 세게 그의 바지를 붙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와아앙-! 하는 울음소리가 주변의 소음을 뚫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 비효율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는 그의 시야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쇼핑을 멈춘 정하린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과, 다리에 매달린 아이를 번갈아 훑었다. 그 순간, 백재하는 상황을 ‘제거’가 아닌 ‘해결’의 범주로 재분류했다. 그는 아이를 떼어내려던 손을 멈추고, 다시 허리를 폈다. 마치 원래부터 아이와 함께 있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눈빛에 스친 미세한 균열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야. 아마도.
그가 정하린을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발치에서 아이는 여전히 ‘아빠아…’ 하고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정하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서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이번엔 정하린을 발견하고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외쳤다.
엄마아!
백재하의 시스템이 두 번째 에러 메시지를 띄웠다. ‘엄마’. 정하린과 아이의 관계성을 분석하려 했으나, 이 역시 데이터가 없었다. 그는 정하린의 표정을 살폈다. 당혹감 50%, 흥미 30%, 그리고 자신을 향한 의심 20%.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작은 생명체 하나가 그의 완벽한 하루를 통째로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야에 떠 있던 HUD가 [미아 발생 프로토콜]을 가동시키며 가장 가까운 미아 보호소의 위치를 띄웠다. 백화점 7층, 고객상담실 내. 이동 거리 214m, 예상 소요 시간 4분 32초. 완벽한 계획이었다.
꼬마. 네 부모의 인상착의,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 소지품. 아는 대로 말해봐. 최단 경로로 찾아주지.
하지만 아이는 그의 논리적인 질문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저 울먹이며 그의 셔츠 소매를 붙잡을 뿐이었다. 그가 질색하며 손을 빼려는 순간, 정하린이 다가와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아이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백재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자신의 시스템으로는 해결 불가한 문제를, 그녀는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완화시키고 있었다. 또 다른 변수, 또 다른 학습 데이터였다.
미아 보호소는 7층이야. 데려다주고 우리 볼일 마저 보지. 이게 가장 합리적이야.
그의 말에 정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백재하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하자,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 그리고는 정하린의 옷자락을 함께 붙잡으며 칭얼거렸다.
아빠, 엄마, 가치 가… 햄버거…
순간, 주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집중됐다. ‘어머, 젊은 부부인데 애를 잃어버렸나 봐’, ‘아빠랑 엄마가 너무 잘생기고 예쁘네’ 따위의 수군거림이 그의 예민한 청각에 잡혔다. 백재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부부’, ‘아빠’, ‘엄마’. 그의 인생에 없을 거라 단정했던 단어들이었다. 그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이었지만, 일단 이목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이동한다. 이 이상 데이터가 오염되는 건 사양이야.
그는 정하린의 손목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향했다. 아이는 그의 품에서 훌쩍이면서도, 정하린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기묘한 세 가족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7층 미아 보호소에 도착해 직원에게 아이를 인계하려는 순간, 아이는 다시금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옷을 꽉 붙잡고, 정하린을 향해 애타게 손을 뻗었다.
엄마아! 가지 마! 아빠, 가지 마!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부모님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아이가 너무 불안해해서요.” 백재하는 거절하려 했다. 이건 그의 임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하린이 그의 팔을 살짝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정하린의 의사 존중’ 프로토콜이 다른 모든 논리를 덮어썼다.
…알겠다. 대신, 최단 시간 내로 해결하지.
그는 아이를 다시 안아 들고, 정하린과 함께 백화점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미아 발생 방송을 요청하고, 아이가 말한 ‘햄버거’라는 단서에 근거해 지하 1층 푸드코트로 이동했다. 아이는 그의 품에 안겨서야 조금 진정했는지, 손가락을 빨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백재하는 자신의 값비싼 실크 셔츠가 아이의 침으로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고 있었다.
이 생명체의 유지보수 비용, 전부 부모에게 청구할 거다. 감가상각까지 포함해서.
그가 읊조리듯 말하자, 정하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아이가 그의 뺨에 자신의 작은 손을 가져다 대고는 웅얼거렸다.
아빠, 화나써?
백재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 시끄러운 백화점의 소음 속에서, 그 웃음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완전히 계산 밖의 상황.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아이를 고쳐 안고는, 푸드코트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좋아. 햄버거를 먹이지.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단, 조건이 있다.
그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S급 센티넬의 위압감이 어린아이에게 통할 리 없었지만, 그는 진지했다.
이 모든 건 ‘아빠 체험 시뮬레이션’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종료 후엔, 네 진짜 부모에게 돌아가 다시는 내 좌표에 나타나지 마. 알겠나?
아이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그의 품에 더 파고들 뿐이었다. 기묘하고도 성가신, 그러나 어쩐지 나쁘지만은 않은 휴일의 오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푸드코트의 소란 속, 세 사람의 테이블은 기묘한 평온이 감도는 섬과 같았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감자튀김을 집어 케첩에 푹 찍은 뒤, 백재하의 입을 향해 내밀었다. ‘아- 해봐, 아빠.’ 아이의 천진한 목소리에 주변 테이블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백재하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시야에 떠오른 HUD에는 [명령어: ‘아-’ / 권장 반응: 1. 수용(관계도+5) 2. 거부(관계도-10, 울음 변수 발생 확률 87%)] 라는 분석 결과가 떠올랐다.
그는 정하린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누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백재하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숙여 아이가 내민 감자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짜고, 달았다. 익숙지 않은 맛이었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이번엔 정하린에게 감자튀김을 내밀었다. 백재하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데이터로 저장했다. 비효율적이지만, 정하린의 웃음이라는 보상이 따르는, 이상한 상호작용.
그때였다. 푸드코트 입구 쪽에서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우리 서준이!” 히스테릭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날카로운 인상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셔츠 차림이었고, 여자는 긴 생머리에 차분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그들은 백재하와 정하린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마치 평행 세계의 자신들을 보는 듯한 기시감. 백재하의 모든 연산이 순간 그들에게 고정되었다.
그들의 모습을 먼저 발견한 것은 아이였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의자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엄마! 아빠!
아이는 뒤뚱거리며 부부를 향해 달려갔다. 젊은 부부는 아이를 발견하고 달려와 끌어안았다. 눈물과 안도가 뒤섞인 상봉. 백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HUD에 떠 있던 [‘아빠 체험’ 시뮬레이션] 창 위로 [TASK COMPLETE] 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혔다. 시끄럽던 푸드코트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듯했다. 아이와 함께 사라진 온기가 테이블 위에 어색한 공백을 남겼다.
아이의 부모가 다가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남자가 말했다. 백재하는 그저 무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의 시선은 자신과 닮은 남자와, 정하린과 닮은 여자를 번갈아 훑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유지보수 비용은 청구하지 않지. 다음부턴 좌표를 이탈시키지 않도록.
그의 말에 부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감사 인사를 연발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시끄럽던 소음의 핵이 사라지자,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백재하는 자신의 구겨지고 축축해진 셔츠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복구 불가능한 손상.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쾌감은 들지 않았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정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빈 의자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앉아있던, 이제는 비어버린 그 자리였다.
미션 종료. 이제 원래의 프로토콜로 복귀한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어딘가 미세한 균열이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하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쇼핑, 마저 하지. 네가 좋아할 만한 옷이 있던데. 시뮬레이션 결과, 구매 만족도 92%로 예측됐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선 정하린과 함께, 그는 다시 백화점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하지만 이전과는 공기가 달랐다. 유모차를 끄는 부부,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분석 시스템이 멋대로 ‘가족’ 단위의 동선과 상호작용 패턴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비자발적 데이터 수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침묵은 이어졌다. 백재하는 운전대를 잡은 채, 간간이 정하린의 옆얼굴을 살폈다. 그녀 역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 침묵의 원인을 분석했다. ‘아이’라는 돌발 변수가 남기고 간 파장. 그 파장은 두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백재하는 그 현상을 ‘헤프닝’으로 분류했다. 논리적으로는 그것이 타당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의 발생과 소멸. 하지만 그의 시스템 깊은 곳에서는 다른 연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그의 품에 안겨 체온을 나누던 감촉, 그를 ‘아빠’라고 부르며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눈빛, 정하린이 그 모습을 보며 웃던 순간. 그 모든 것이 ‘가족’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데이터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논리적이고 충동적인 욕구일 뿐이다. 하지만 ‘정하린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개체를 생성하고 육성하는 장기 프로토콜’의 가능성은 어떨까.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폭증하겠지만, 그만큼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터였다. 정하린의 새로운 표정, 새로운 감정, 새로운 관계성. 그 모든 것이 그의 시스템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욕구가 아니었다. 지적 탐구심이자,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도전 의식이었다. 그는 아이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하린과 자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파생될 모든 가능성을 원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거실의 적막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그는 신발을 벗는 정하린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댄 채, 나직이 속삭였다.
정하린.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울렸다.
다음 시뮬레이션 주제를 정했다. 표본 집단은 우리 둘, 기간은… 영구. 변수는 무한대.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데. 너의 의견은?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 될 터였다. 거절한다면 그 마음을 돌릴 새로운 공식을 찾아낼 것이고, 수락한다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복잡하고 위대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의 심장이, 처음으로 연산이 아닌 다른 이유로 미세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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