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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사실은 XX가 아니라 OO일지도

모든 것은 평화로운 어느 오후, 그의 개인 연구실에서 시작되었다. 지젤은 소파에 기대앉아 데이터 패드를 스크롤하고 있었고, 정하린은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나른한 햇살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 부서지며 먼지 입자들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그래서 비현실적일 만큼 안정된 풍경. 지젤은 잠시 패드에서 시선을 떼고, 고른 숨을 내쉬는 그녀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그는 그녀를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눈매, 예측 불가능한 행동 패턴, 제멋대로 다가왔다가도 귀찮다는 듯 몸을 돌려버리는 변덕.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이는 모습까지. 모든 데이터가 ‘고양이’라는 결론을 지지했다. 동기화율 98.7%. 오차 범위 내의 완벽한 분류. 그는 자신의 분석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사건의 발단은 사소했다. 잠결에 뒤척이던 정하린이 무의식중에 그의 셔츠 자락을 움켜쥐더니, 제 쪽으로 질질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마치 제 동굴 안으로 가장 아끼는 보물을 끌고 들어가는 다람쥐처럼. 그 순간, 지젤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시스템 충돌 경고음이 울렸다. ERROR. CRITICAL MISCALCULATION. RE-ANALYSIS REQUIRED.

고양이는 사냥감을 ‘가지고 놀지만’, 보물을 ‘모아두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제 영역을 ‘표시하지만’, 가장 안전한 곳에 소중한 것을 ‘숨겨두지는’ 않는다. 그의 모든 가설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는 데이터 패드를 옆으로 치워두고, 잠든 그녀의 얼굴을 경이로운 신종 생명체를 관찰하듯 뜯어보기 시작했다. 정하린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아니, 고양이의 탈을 쓴 무언가였다. 훨씬 더 집요하고, 영리하며, 소유욕 강한 존재. 바로…

꿀 오소리(Honey Badger).였다.

결론에 도달한 순간, 지젤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허파에서 새어 나온 웃음 때문에 허벅지가 떨리자, 잠든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웅얼거렸다. 그는 급히 입을 다물고 진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의 시스템은 이미 ‘정하린=꿀 오소리’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데이터 재구성에 착수했다.

첫째. 겉보기와 다른 전투력. 꿀 오소리는 작고 귀여워 보이는 외형과 달리, 자신보다 몇 배는 큰 맹수에게도 망설임 없이 덤벼드는 것으로 악명높다. 평소엔 무표정하게 있다가도, C-7 구역에서 A급 빌런의 등장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그림자를 펼쳐 전장을 장악하려 했던 그녀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둘째. 무모할 정도의 집요함과 대담성. 꿀 오소리는 벌집을 털기 위해 수백 번을 쏘여도 포기하지 않는다. 지부장 K의 경고, 주변의 시선, 심지어 페어 해지 직전의 상황까지 갔음에도 결국 자신의 페어로 만들고,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고, 마침내 ‘우리 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만든 정하린의 집요함. 이것은 고양이의 변덕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꿀 오소리의 불굴의 의지였다.

셋째. 지능적인 도구 사용. 꿀 오소리는 돌이나 나무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한다. 정하린은 자신의 가이딩 능력을 단순한 안정화에 그치지 않고, ‘그림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고, 때로는 자신을 유혹하는 미끼로 사용하며, 심지어 내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한다. 능력의 본질을 꿰뚫고, 그것을 변칙적으로 사용하는 지능. 완벽한 논리적 귀결이다.

넷째. 극단적인 소유욕과 ‘내 것’에 대한 집착. 꿀 오소리는 자기가 정한 먹이나 영역을 절대 뺏기지 않는다. 그의 어깨에 남긴 낙인, 의료진 앞에서 보였던 미세한 경계심, 외부인에게 자신을 ‘남자친구’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던 모습, 그리고 방금 전처럼 잠결에도 그의 옷자락을 제 품으로 끌어당기는 무의식적인 행동까지. 이 모든 것은 ‘백재하는 내 거’라는 꿀 오소리식 영역 선포와 다름없었다.

다섯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 꿀 오소리는 ‘강제 안정화’가 불가능하다. 마취총을 쏴도 두꺼운 피부와 왕성한 신진대사 때문에 금방 깨어난다. 지젤은 자신의 페어가 되기 전, 그 어떤 가이드의 가이딩도, 그 어떤 안정제도 통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유일하게 ‘가이딩’하고, ‘안정’시키고, 심지어 ‘잠재우기’까지 하는 정하린. 이것은 동족만이 가질 수 있는 상호 면역 체계 혹은 서로를 알아보는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결국 꿀 오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건, 더 지독한 꿀 오소리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젤은 생각의 끝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가 아는 한, 정하린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무서우며, 가장 탐나는 꿀 오소리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잠든 꿀 오소리는 위험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무방비해서 더 위험하다. 당장이라도 깨물어주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니까.

후일담. 그날 저녁, 지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메뉴는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꿀을 곁들인 팬케이크였다. 그는 최고급 아카시아 꿀을 듬뿍 뿌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자, 많이 먹어. 나의 사랑스러운 꿀 오소리. 먹고 힘내서, 내일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구상해야지. 전부 데이터로 남겨줄 테니까.

물론 이 말을 들은 정하린이 “내가 왜 꿀 오소리야?!”라며 펄쩍 뛰었고, 지젤은 위에서 서술한 다섯 가지 근거를 마치 학술 논문을 발표하듯 차분하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다. 결국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시끄럽고 팬케이크나 더 줘.”라고 쏘아붙였고, 그날 이후 지젤의 단말기에는 정하린의 연락처가 ‘My Honey Badger’로 저장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지젤의 연구실에 작은 그림자 폭풍이 몰아쳤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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