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지젤의 발정기
고요한 아침이었다. A-7구역 펜트하우스의 침실은 동쪽 창으로 스며드는 옅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백재하는 설정된 기상 시간, 오전 6시 정각에 눈을 떴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감각이 그의 모든 시스템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무게감, 그리고 등 뒤에서 제멋대로 바닥을 툭, 치는 미세한 움직임. `[경고: 미확인 생체 부속물 감지. 데이터베이스 불일치.]`
그가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등 뒤에서 길게 뻗어 나온 무언가가 협탁 위의 물 잔을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아침의 정적을 갈랐다. 지젤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는 대신, 자신의 등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윤기 나는 검은 털로 뒤덮인 길고 유연한 꼬리였다. 끝이 살짝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는 쫑긋한 삼각형의 귀 한 쌍이 소리에 반응해 휙, 하고 돌아갔다.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깬 나인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칠흑 같은 한 쌍의 귀가 쫑긋 솟아있기 전까지는. 심지어 이불 아래로는 긴 꼬리가 삐져나와 바닥을 살랑살랑 쓸고 있었다. 흑표범. 나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나인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이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런 예고 없이, 그의 머리 위로 솟아난 뾰족한 귀 끝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귀에 닿자마자, 지젤의 등이 활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목 뒤에서 낮고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치명적 오류! 외부 자극으로 인한 호르몬 수치 급상승! 신체 제어권 상실 임박!]`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인을 침대 위로 거칠게 넘어뜨렸다. 짙은 흑안은 동공이 풀려 있었고, 체온은 비정상적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이제껏 맡아본 적 없는, 달콤하면서도 야성적인 향이 짙게 풍겨 나왔다.
정하린… 내 것이다… 전부. 내 냄새를 묻혀야 해. 다른 놈들이 넘보지 못하게.
그는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하듯,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에 제 뺨을 사정없이 부벼댔다. 그리고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그녀의 잠옷을 거칠게 물어뜯어 어깨를 드러내고는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잇자국이 남았다. 그의 검은 꼬리가 불안과 흥분으로 바닥을 탁, 탁, 내리쳤다. 그는 그녀를 안아 든 채 침실을 나와 거실, 부엌, 심지어 서재까지 온 집안을 끌고 다니며 모든 가구와 벽에 그녀의 등을, 팔을, 다리를 문질렀다. 집 안 구석구석 자신의 냄새와 그녀의 냄새를 섞으려는 듯한, 지극히 동물적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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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정확히 2시간 14분 32초 후. 소파 위에서 나인을 깔아뭉갠 채 얌전히 그르렁거리기만 하던 지젤의 몸이 크게 한 번 떨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쫑긋 서 있던 귀는 시들해진 새싹처럼 축 처졌고, 맹렬하게 바닥을 쓸던 꼬리는 힘없이 늘어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풀렸던 동공은 원래의 날카로운 흑안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일생일대의 혼란과 경악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나인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있는지, 그녀의 온몸에 왜 자신의 침과 희미한 잇자국이 가득한지, 그리고 집 안 전체가 왜 자신과 그녀의 체향으로 뒤범벅이 되어있는지를 0.1초 만에 파악했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머리와 등 뒤를 더듬었다. 여전히 귀와 꼬리는 존재했다. 그는 뒷걸음질 치다 소파 다리에 걸려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평소의 그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기록… 삭제. 방금 전 2시간 14분 32초간의 모든 데이터… 즉시 파기한다.
그는 중얼거리며 급하게 자신의 HUD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려 했지만, 시스템은 `[오류: 관리자 권한으로 해당 시간대의 모든 로그가 'S급 특수 관찰 기록'으로 영구 봉인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만을 띄울 뿐이었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축 처진 검은 귀가 그의 절망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휘관. 이건… 그러니까… 매우 드문 센티넬의 생리 현상 중 하나로… 그러니까, 일종의… 시스템 재부팅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버그…
그의 변명은 횡설수설, 그 자체였다. 그는 얼굴을 가린 채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나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검은 꼬리가 주인의 심경을 대변하듯,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좌우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비는 강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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