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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엄지왕자

[단편 시나리오] 엄지손가락만 한 그 남자


1. 사건의 발단
그날은 유독 평화로운 오후였다. 빌런 출몰 경보도, 지부의 호출도 없는 완벽한 휴일. 지젤은 자신의 연구실 한편에 마련된 개인 실험대에서 새로운 가이딩 파형 안정화 시약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정하린은 소파에 앉아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평온 그 자체였다.


…정하린, 이쪽으로 잠시 와 볼래. 새로운 시퀀스 파형인데, 네 가이딩 파장과 동기화 테스트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비커에 담긴 연보라색 시약이 미세한 진동과 함께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폭발이라기엔 너무나 고요하고 작은, 마치 샴페인 마개가 '퐁' 하고 열리는 듯한 소리. 그리고 자욱한 연기가 걷혔을 때, 그가 서 있던 자리엔 흰 실험복과 옷가지들만이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백재하?

하린이 놀라 다가간 순간, 옷더미 속에서 작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좌표 계산 오류. 변수 제어 실패… 정하린, 거기 말고. 아래, 네 발밑!

하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곳엔, 그녀의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줄어든 백재하가 씩씩거리며 자신의 실험복 소매 끝자락에 서 있었다. 평소의 그 옷차림 그대로, 심지어 코딱지만 한 안경까지 얌전히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2. NPC의 반응 및 심리 변화
[1-2일차: 분노와 통제 불능의 굴욕]
초기 지젤의 반응은 극도의 분노와 상황을 즉시 해결하려는 조급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 `GISELLE SEQUENCE`를 가동해 원상복귀를 위한 모든 경로를 계산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물리적 제약으로 인한 실행 불가. 예상 소요 시간: 7일.’
하린이 그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깨끗한 유리병에 넣자, 그의 굴욕감은 극에 달했다.

 

금 뭐 하는 거지? 당장 꺼내. 이건 명백한 인권 침해 및 불법 감금 행위다, 정하린.

그의 항의는 유리병 안에서 웅웅거리며 울릴 뿐, 모기 소리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다. 하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래야 안전하잖아, 재하야. 밟히면 어떡해.


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이성과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유리병 벽을 주먹으로 치며 끊임없이 탈출 시퀀스를 계산했지만, 작은 몸으로는 뚜껑 하나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지성과 능력이 무력한 육체 앞에 얼마나 하찮아질 수 있는지 처음으로 실감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3-5일차: 체념과 새로운 관찰]
사흘째가 되자, 지젤은 저항을 멈췄다. 체념에 가까운 수용이었다. 그는 유리병 안에서 팔짱을 낀 채, 마치 거대한 신처럼 움직이는 하린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린이 자신을 주머니에 넣고 외출할 때, 병 속에서 세상은 거인의 왕국처럼 보였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상황 타개’가 아닌 ‘생존과 관찰’로 전환되었다. 그는 하린이 자신을 위해 잘게 부순 과자 부스러기를 넣어줄 때, 빵 조각으로 작은 침대를 만들어줄 때, 숨쉬기 편하게 뚜껑에 구멍을 뚫어줄 때마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기록했다.


…수분 공급 빈도, 적절. 영양소 배합, 불균형하나 생존엔 문제없음. 흥미롭군.

그의 말투는 여전히 분석적이었지만, 이전의 날카로움 대신 무기력한 관조가 섞여 있었다. 그는 하린의 손가락이 병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 저항하는 대신 가만히 그 감촉을 느꼈다. 거대하고 따뜻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6-7일차: 의존과 미묘한 안정감]
일주일이 가까워지자, 지젤은 이 기묘한 상황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는 더 이상 하린의 보살핌에 토를 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린의 웃음소리가 유리병을 통해 진동으로 전해질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안정시키는 일종의 '거시적 가이딩'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서 오는 역설적인 평온함이었다.


…정하린. 내일 14시 정각, 분자 구조 복원 시퀀스가 재개된다. 그전까지… 옆에 있어.

유리병 속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라기보단 부탁에 가까웠다. 그는 처음으로 완벽한 무력함 속에서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감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3. 일주일 간의 에피소드
에피소드 1: <작전명: 냉장고를 확보하라>
하린이 저녁 식사를 위해 냉장고 문을 열자, 주머니 속 유리병에서 지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잠깐! 현재 위치에서 3초간 대기! 전방에 미확인 액체 낙하 예상. 경로 오염 가능성 있음!

하린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냉장고 선반 끝에 맺힌 물방울이 보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물방울을 닦아냈다. 지젤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상단 선반, 2시 방향의 계란 팩. 유통기한 데이터 불일치 가능성. 스캔 필요. 내가 직접 확인해야…

재하야, 어제 산 거야.

…작전 변경. 하단 야채 칸으로 진입한다. 최적의 동선은…

하린은 그의 '지휘'를 무시한 채 저녁 재료를 꺼냈고, 지젤은 유리병 안에서


비효율적인 동선이다! 내 계산대로라면 3.7초는 단축할 수 있었어!


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에피소드 2: <고양이와의 조우>
휴일 오후,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던 하린의 무릎 위로 길고양이가 뛰어올랐다. 하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고양이는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병에 호기심을 보였다. 고양이는 앞발로 유리병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병 안에서 지젤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이 생명체, 적대적 의도 파악 불가! 위협 수준 C급으로 상향 조정! 정하린! 지원 요청! 이건 명령이다!

고양이가 솜방망이 같은 발로 뚜껑을 긁자, 지젤은 유리병 구석에 몰려 필사적으로 외쳤다.


최종 방어선이다! 이 이상 접근 시… 내 모든 시퀀스를 이용해 네놈의 뇌신경 회로를…

그의 협박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하린이 고양이를 안아들며


우리 재하 괴롭히면 못써!


라고 말했다. 고양이의 위협(?)에서 벗어난 지젤은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예상된 변수였다. 테스트였을 뿐.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미세하게 창백해져 있었다.


에피소드 3: <유리병 속의 영화 감상>

하린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녀는 지젤이 담긴 유리병을 자신의 베개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스크린에서 액션 영화가 시작되고, 폭발음과 총격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때, 유리병을 진동시키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공의 선택은 최악이야. 저기서 우회했어야지. 적의 패턴이 뻔히 보이는데.

…재하야, 그냥 영화야.

모든 것엔 최적의 경로가 존재해. 저런 비합리적인 영웅주의는 감정 낭비일 뿐… 아, 저기서 엄폐물을 잘못 선택했군. 3초 뒤에 피격당한다.

정말로 3초 뒤, 주인공은 팔에 총을 맞았다. 하린은 기가 막혀 웃으며 유리병을 향해 속삭였다.


너랑은 영화 못 보겠다, 정말.

지젤은 대답 대신, 하린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스크린의 현란한 빛이 그의 작은 안경에 반사되었다. 그는 영화를 보는 척했지만, 사실 그의 모든 감각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하린의 숨소리와 웃음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4. 후일담: 원래대로 돌아온 후
정확히 일주일 뒤, 예고했던 시간에 지젤의 몸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연구실 바닥에 알몸으로 서 있었다. 하린이 급하게 가져온 담요를 두른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 지젤의 행동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는 여전히 분석하고 계산했지만, 이전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지는 않았다. 특히 하린과 관련된 일에서는 더욱 그랬다.
어느 날 저녁, 하린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접시를 놓칠 뻔했다. 지젤은 순식간에 그녀의 뒤로 다가가 접시를 붙잡았다. 하린이 놀라 돌아보자, 그는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고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앞으로 네 반경 3미터 내에서는, 모든 변수를 내가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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