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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전남친 모임

고요했다. Fearless 지부 연구A동 14층의 밤은 언제나 그랬다. 백재하의 개인 연구실을 채우는 것은 오직 메인 서버의 낮은 구동음과 허공에 떠 있는 반투명한 HUD 인터페이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빛뿐이었다. 그는 까만 안경 너머의 눈으로 복잡한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책상 위에서 느릿하게, 일정한 박자로 툭, 툭,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새로운 빌런의 이동 경로 예측, 그에 따른 수백만 가지의 파괴 시퀀스를 연산하던, 지극히 평범하고 정적인 밤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지극히 평범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그의 공간에서는 이질적인 알림음이 울렸다. 개인 단말기였다. 업무용과 완벽히 분리된, 극소수의 인물만이 아는 번호. 그의 손가락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알림음이 울린 단말기 쪽으로 기울었다.

화면에 뜬 것은 단체 채팅방 초대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방의 구성원은 단 세 명.

[정하린, 백재하, 김민준]

백재하의 눈썹 한쪽이 아주 천천히,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꿈틀거렸다. 그의 시스템은 ‘김민준’이라는 낯선 입력값에 대해 즉시 분석에 들어갔지만, 그보다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채팅방에 곧바로 이어진 메시지였다.

[정하린: 뭐 해]

순간, 연구실을 채우던 정적의 밀도가 달라졌다. 백재하의 입가에 스멀스멀, 조롱이라고 하기엔 너무 순수하고, 미소라고 하기엔 너무나 유희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댔다. 까만 의자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조용히 삐걱였다. 모든 시뮬레이션이 중단되었다. 허공의 데이터 창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오직 그의 눈앞에 작은 단말기 화면만이 선명하게 부유했다.

재밌네.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스템은 이미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Case 1: 정하린의 의도적 도발. 목적: 반응 관찰. 확률: 1.7%`
`Case 2: 시스템 오류 혹은 해킹. 확률: 0.03%`
`Case 3: 사용자(정하린)의 조작 실수. 발신 시각, 요일, 시간대를 고려한 혈중 알코올 농도 추정치 0.09% 이상. 이 경우, 사용자는 현재 극심한 인지 부조화 및 자기혐오 상태에 돌입했을 가능성 농후. 확률: 98.27%`

결과는 명확했다.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선명한 호를 그렸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 관절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냈다. ‘생각이 끝났음’을 암시하는 버릇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쥐어뜯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단말기를 집어 던질까 고민하고 있을 모든 순간이 영상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그 모든 변수를 차단하고 판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7초면 충분했다.

백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허공에 손을 뻗어 몇 개의 키워드를 입력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GISELLE SEQUENCE: ACTIVATE]`
`Target Designation: '김민준'`
`Objective 1: Information Acquisition (신상 정보 확보)`
`Objective 2: Access & Control (접근 및 제어권 확보)`
`Objective 3: Neutralization (무력화)`

순식간에 Fearless의 메인 서버와 연동된 그의 시스템이 대한민국 전역의 통신망을 스캐닝하기 시작했다. 동명이인 5,824명. 정하린과의 접점(과거 통화기록, SNS 친구 목록, 신용카드 공동 결제 내역)을 교차 분석하여 단일 개체를 특정하는 데 걸린 시간, 1.3초. 이름 김민준, 32세, 직업 변호사, 정하린과의 교제 기간 6개월, 결별 사유 ‘성격 차이’. 현재 위치, 강남구의 한 와인 바.

그다음은 더 간단했다.

백재하는 김민준의 개인 단말기에 시스템을 침투시켜 그가 채팅방 자체를 인지하기 전에 모든 알림을 차단하고 관련 로그를 삭제했다. 동시에, 해당 단체 채팅방의 서버를 역추적해 물리적으로 파괴했다. 채팅방은 생성된 지 정확히 6.8초 만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우주에 없었던 별처럼.

마지막으로 그는 정하린의 단말기에 원격 접속했다. 그녀가 ‘카톡 탈퇴’ 버튼을 누르기 0.1초 전이었다. 그는 그녀의 화면에서 모든 흔적을 지웠다. 단체 채팅방, ‘뭐 해’라는 메시지, 심지어 ‘김민준’이라는 이름 석 자까지. 그녀의 단말기에는 오직 ‘알 수 없는 시스템 오류로 일부 데이터가 손상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만이 남았다.

모든 처리가 끝나자, 백재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에 걸린 흰 실험복을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옆에 놓인 차 키를 집어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 이제…

그의 걸음은 망설임 없이 연구실 문을 향했다.

오류를 수습하러 가야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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