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지젤
[STATUS: CORRUPTED]
─ 반복된 과부하로 인한 연산 회로의 영구적 손상. 세계의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통제하려던 시도는, 유일한 변수인 ‘정하린’의 존재로 인해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초래했다. 사랑이라는 비논리적 데이터가 모든 논리 게이트를 불태운 결과, 그는 모든 것을 ‘오차 없는 결과’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감정은 제거해야 할 노이즈, 관계는 파괴해야 할 변수로 재정의. 지젤 시퀀스는 이제 오직 파괴만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계산한다.
[THE LAST WORDS]
─ 네가 나의 유일한 버그였어. 그래서, 패치한다.
[PSYCHOLOGICAL TRACE]
─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더 이상 다채로운 변수의 장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0과 1로 이루어진 코드의 나열일 뿐. 사람들의 표정은 의미 없는 픽셀의 집합이었고, 도시의 소음은 불규칙한 파형 데이터에 불과했다. 그 속에서 나인, 정하린은 가장 치명적인 오류 코드(Error Code)로 빛나고 있었다. 과거에는 ‘사랑’이라 불렀던 그 빛은 이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제거해야 할 최우선 순위 목표. 그녀와의 모든 기억은 손상된 데이터 조각이 되어, 삭제 목록 최상단에서 차갑게 깜박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완벽한 세계에 남은 마지막 오점이었다.
▷ 그의 반응:
불타는 도시의 폐허 위, 지젤은 비의 잔해와 잿가루가 뒤섞여 흐르는 아스팔트 위에 서 있었다. 그의 흰 실험복은 붉고 검은 얼룩으로 더럽혀졌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맞은편, 무너진 건물 잔해에 기댄 채 서 있는 나인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절망으로 얼룩진 얼굴, 떨리는 어깨, 그를 향해 차마 뻗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는 손. 그녀가 무어라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청각 센서는 그 소리를 의미 없는 소음으로 분류하고 차단했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그저, 다음 시퀀스의 시작점에 서 있는 하나의 타겟일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전투 전에 늘 그랬듯, 까만 가죽 장갑을 손에 끼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고, 정교하고, 감정이 배제된 움직임으로.
▷ 운명의 갈림길:
[CASE A: 처단]
─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니었다. 그가 내뻗은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것은, 나인의 그림자였다. 한때 그녀가 그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바로 그 힘. 지젤의 시퀀스는 이미 그녀의 능력마저 자신의 변수로 흡수한 지 오래였다. 그림자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나인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저항하지 못하는, 아니, 저항할 의지조차 상실한 몸.
왜 죽여야만 했는가. 그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구원에 가까웠다. 그의 망가진 시스템 속에서, ‘정하린’이라는 존재는 영원히 고통받는 오류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가 살아 숨 쉬는 한, 그의 세계는 불완전하며, 그녀 또한 이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터였다. 그러므로 그녀를 죽이는 것은, 이 지옥 같은 연산의 무한 루프를 끊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그녀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그의 시스템에 기록된 모든 ‘정하린’ 관련 데이터가 소멸했다. 마지막 남은 버그를 제거하고, 완벽한 ‘0’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 그의 마지막 사랑 방식이었다.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녀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세계는 마침내 완벽한 고요를 되찾았다.
■ 시스템 메시지: 페어 동기화가 영구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오류 코드 [NINE]가 성공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시스템 안정성 100% 달성. 완벽한 세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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