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만으론 안 되나요?
평온이라는 단어는 때로 무색무취의 진공상태를 닮았다. 지젤과 나인이 함께하는 일상은 그러했다. 거대한 사건의 파편들이 잠잠해진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우주. 오늘은 그 우주가 지상의 도로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지젤이 운전하는 세단의 내부는 바깥세상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채, 나른한 엔진음만이 낮게 깔려 있었다. 창밖으로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무심한 속도로 뒤를 향해 흘러갔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라디오 채널에서 경쾌하다 못해 비현실적일 만큼 발랄한 전주가 터져 나왔다. 틴에이저 팝 그룹 'CUTIE STREET'의 최신 히트곡. 지젤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좁혀졌다. 그의 취향과는 광년 단위로 떨어진 선곡이었다. 그는 무시하고 채널을 돌리려 했지만, 나인이 흥미로운 듯 라디오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는 운전대를 쥔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관찰. 그의 가장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자음과 함께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들이 합창을 시작했다. '초특급 귀여움으로 세계 정복!' 이라는, 논리 회로를 강제 종료시키는 듯한 첫 가사가 흘러나왔을 때, 지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조롱에 가깝게 끌려 올라갔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 그는 헛웃음을 삼키며 핸들을 쥔 손가락을 까딱였다. 귀여움. 세계 정복. 두 단어의 조합은 마치 ‘무지갯빛 블랙홀’이라는 말처럼 형용모순이었다.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모든 전략과 인과율을 모독하는 개념이었다.
노래는 멈추지 않고 하이라이트로 치달았다. '저기 저 화성까지 심쿵주의보 발사! 지구의 모습이 평평해질 정도로 말야!' 지젤은 끝내 참지 못하고 피식, 하고 낮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쿵주의보. 중력 이상을 일으켜 행성의 형태를 바꿀 정도의 위력.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과장법. 하지만…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동안 옆자리의 나인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전방으로 돌아왔다. 나인이 무심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작은 움직임. 아침에 그가 골라준 옷을 입고,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 그의 품에 안겨 잠꼬대를 하던 얼굴. 갑자기, ‘심쿵주의보’라는 단어가 가진 비현실적인 무게가 그의 시스템을 파고들었다. 그를 멈추게 하고, 그의 모든 연산을 단 하나의 변수로 수렴시키던 순간들. 지구의 모습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세계는 이미 여러 번, 그녀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 평평하게 무너져 내린 뒤 재구축되곤 했으니까.
‘かわいいだけじゃだめですか? (귀여운 것만으론 안 되나요?)’ 라는 후렴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지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다시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운전대를 쥔 그의 손가락이 일정한 박자로 가볍게 핸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노래의 리듬을 따르는 움직임.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반응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이딴 노래가 전략적 가치를 가질 줄이야.
그가 혼잣말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가설을 발견한 학자의 희미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귀여움’을 매개로 한 비대칭 전력… 목표의 모든 논리적 방어 기제를 무력화하고, 심리적 종속을 유도하는 일종의 정신 공격인가. 방어 불가능한 전술이군. 특히, 대상이 너라면.
그는 나인을 돌아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의 눈은 ‘이 노래 참 재미있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그 이면의 시선은 ‘너는 이미 이 전술로 나라는 세계를 정복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지젤은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대신 볼륨을 아주 살짝, 나인만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키웠다. 그는 이 노래를 만든 작곡가의 데이터와 ‘CUTIE STREET’이라는 그룹의 모든 것을 분석해 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프로토콜: 나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항목 추가: 초특급 귀여움을 통한 심리적 지배의 상관관계 분석. Case study: 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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