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보고 싶어서 옷으로 널 기억했어
도쿄 상공을 뒤덮었던 네이팜과 플라스마가 뒤섞인 지옥에서 빠져나온 지 엿새째. 지젤은 모든 공식 브리핑과 사후 처리 보고를 단 두 줄의 명령어로 끝내버렸다. [결과: 전원 제거. 세부 사항: 보고서 참조.] 그리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지부의 전용기를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돌렸다. 그의 시스템은 지난 144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인과율을 계산하고, 변수를 통제하고, 파괴의 시퀀스를 실행했다. 안정제는 진작에 한계치를 넘어섰고, 전신을 옥죄는 피로감은 감각 뉴런을 태워버릴 듯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단 하나의 좌표만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정하린. 그녀가 있는 곳.
예정보다 사흘이나 이른 귀환이었다. 그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연락을 모조리 차단하고, 자신을 마중 나온 요원에게 차 키만 건네받아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문을 열었을 때, 예상치 못한 자신의 등장에 동그래질 그녀의 눈. 그리고 이내 와락 안겨오며 퍼져나갈 그녀만의 체온과 향기. 그 장면 하나를 시뮬레이션하는 것만으로도, 너덜너덜해진 그의 정신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A-7구역 펜트하우스의 도어록이 그의 지문을 인식하고 소리 없이 열렸을 때, 지젤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완벽한 정적이었다. 현관부터 거실까지, 모든 것이 그가 떠나기 전과 다름없이 정갈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인기척이 없었다. 공기마저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의 부재. 그의 미소가 천천히 옅어졌다.
정하린.
나직하게 흘러나온 부름은 메아리 없이 거실의 넓은 공간으로 흩어졌다. 대답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외출한 건가. 이 시간에? 갑작스러운 임무? 그의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가능성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피로에 잠긴 뇌가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익숙하게 무시하며 가장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침실로 향했다. 어쩌면 그저, 깊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서.
그리고 침실 문을 열어젖힌 순간, 지젤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시간의 흐름이 멎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단번에 지워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위, 그와 그녀의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쌓인 작은 언덕 한가운데에 파묻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나인의 모습이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둥지 속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안식에 든 작은 새처럼. 그의 셔츠, 그녀의 스웨터, 함께 샀던 커플 후드티. 그 모든 것들이 그녀를 감싸는 부드러운 성벽이 되어 있었다.

그는 문가에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 엿새간 그를 괴롭혔던 지독한 감각 과부하와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감각. 텅 비어 있던 시스템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에너지가 강물처럼 밀려들어와 모든 빈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천천히, 소리 나지 않는 걸음으로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잠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평온한 얼굴, 고른 숨결에 작게 오르내리는 어깨, 자신의 체향이 짙게 밴 옷가지에 뺨을 묻은 모습. 그 모든 것이 ‘안정’, ‘평화’, ‘완벽’이라는 단어의 새로운 정의였다.
그는 깨우지 않으려 했다. 이 신성한 평온을 단 1초라도 더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와는 다른 연산을 끝마친 듯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잠든 그녀의 이마에,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겼다.
돌아왔어, 나의 공주님.
속삭임은 거의 공기의 흐름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의 곁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피와 먼지로 얼룩진 재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 성역에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오염원이었다.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고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낸 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옷의 산에 기대듯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잠든 그녀의 어깨를 아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인은 잠결에 희미하게 칭얼거리며, 더욱 편안한 자리를 찾듯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지젤은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샴푸 향과, 자신의 체향, 그리고 햇살의 냄새가 뒤섞인, 세상 그 어떤 가이딩보다 완벽한 안정.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모든 계산과 분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오직 그녀의 존재만이 유일한 진리가 되는 세계. 수많은 시뮬레이션 속에서 단 한 번도 예측하지 못했던, 가장 완벽한 형태의 귀환이었다.
‘후일담’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 뒤, 지젤은 자신의 연구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던 복잡한 시퀀스 다이어그램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단 하나의 사진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바로 그날, 옷가지들 속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던 나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것을 ‘프로토콜: 종착지’라고 명명했다. 이후 Fearless의 모든 요원들은 S급 센티넬 지젤이 임무 복귀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연구실에 들러 그 사진을 몇 분이고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완벽한 디브리핑이자, 그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싸우는 유일한 이유를 재확인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지젤의 해외 임무 기간은 눈에 띄게 짧아졌고, 그는 언제나 예정보다 조금씩 이르게, 그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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