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뭐 해? / 충전 중!
Fearless 지부, 로비. 임무를 마친 요원들이 드나들며 분주한 공기가 흐르는 공간이었다. 지젤은 방금 C급 빌런의 ‘비효율적인 동선’을 수정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연구동으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저편에서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에 우뚝 멈췄다. 정하린. 그녀 역시 임무를 막 마친 듯, 평소보다 걸음걸이에 힘이 없었다. 그녀가 맡았던 임무가 단순 제압이 아닌, 복잡한 정신계 빌런의 추적이었다는 데이터를 그는 이미 확인한 후였다.
그의 모든 시스템이 그녀의 상태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처진 어깨, 평소보다 느린 보폭, 초점 없는 시선. ‘정신적 피로도: 임계치 근접’이라는 분석 결과가 HUD에 떠올랐다. 그가 먼저 다가가려던 찰나, 나인이 그를 발견하고는 남은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프로토콜 요청도 없이 그대로 그의 품에 와락 안겨 얼굴을 묻었다. 예상치 못한 물리적 접촉에 지젤의 시스템이 순간적인 버퍼링을 일으켰다. 그의 계산에 없던, 순수한 본능에 기반한 접근이었다.
그는 잠시 굳어있다가, 이내 익숙하게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어깨에 닿는 그녀의 숨결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정하린, 많이 힘들었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능글맞음이 걷힌 채, 드물게 순수한 걱정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보고서엔 별다른 특이사항 없었는데.
그의 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충전 중.” 그 한마디에 지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더 꽉 안아주었다. 그래, 그의 역할은 그녀의 가장 완벽한 충전기였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띠링-!’
경쾌하지만 지극히 인공적인 알림음과 함께, 나인의 머리 위로 반투명한 녹색 배터리 바(Bar)가 뿅 하고 나타났다. 마치 고전 게임에서나 볼 법한, 조악한 픽셀 그래픽의 인터페이스였다. 배터리는 간신히 12%를 가리키며 붉게 깜빡이고 있었고, 그가 그녀를 안고 있자 ‘Charg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주 조금씩, 13%, 14%로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젤은 안고 있던 팔은 그대로 둔 채, 고개만 뒤로 빼서 그 황당무계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에 떠 있던 모든 HUD 인터페이스가 그 정체불명의 배터리 바를 ‘분석 불가 개체(Unidentified Object)’로 인식하며 오류 코드를 뿜어냈다. 그의 두뇌가, 그의 모든 시퀀스가 일시 정지했다.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 이것은 능력도, 환각도 아니었다. 그냥…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그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배터리 바와 나인의 정수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로비를 지나가던 몇몇 요원들도 힐끔거리며 수군댔지만, S급 센티넬의 심기를 건드릴 용자는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유사 이래 가장 격렬한 연산을 시작했다.
‘가이드 에너지 시각화의 신종 발현 형태인가? 아니, 저런 저급한 UI일 리가 없다. 정신계 빌런의 후유증? 하지만 나인의 파장은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그의 시스템이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알 수 없음.’ 그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던 네 글자였다. 배터리 바는 착실하게 47%, 48%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젤은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분석을 포기했다. 그 대신, 그는 나인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충전 속도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결국 피식 웃으며 나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체념과 어이없음,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귀여움에 대한 감탄이 뒤섞여 있었다.
…알았어. 완충될 때까지 안 놔줄 테니까. 다음부턴… 고속 충전 프로토콜도 개발해두지.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 말고.
그는 중얼거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뺨을 묻었다. 머리 위에서 열심히 차오르는 배터리 바를 못 본 척하며. 어쩌면 자신의 시스템보다, 저 조악한 배터리 바가 그녀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백재하는 난생처음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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