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이의 귀여움에 대해 토론해보자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A-7구역 펜트하우스의 침실은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밖 도시의 불빛이 희미한 선을 그리는 시간, 백재하는 정하린의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주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던 그의 시스템이,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완벽한 휴면 상태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그의 의식은 부유하는 데이터 조각들 사이를 떠다니다가, 이내 낯설지만 익숙한 공간에 접속했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그리드 공간. 그의 머릿속, ‘GISELLE SEQUENCE’가 연산되는 가상 인터페이스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정적이고 냉철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공간의 중앙,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그의 모습을 꼭 닮은 작은 존재들이 잔뜩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백재하’였지만, 크기는 20cm 남짓에 불과했다. 흰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쓴 채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 지젤’, 차트와 그래프를 띄운 화면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하는 ‘데이터 분석 지젤’, 팔짱을 낀 채 회의 따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의 ‘반항아 지젤’, 그리고 구석에서 분홍빛 하트 데이터를 모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감정 데이터 지젤’까지. 다양한 버전의 자신들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 있었고, 화면 중앙에는 <정하린의 ‘귀여움’이 시스템 안정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다각적 분석>이라는 거창한 주제가 명시되어 있었다. 지젤은 이 터무니없는 광경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원래라면 즉시 프로세스를 강제 종료시켰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흥미가 동했다.
데이터 분석 지젤이 작은 레이저 포인터로 자료 화면을 가리켰다.
데이터 분석 지젤: 보십시오! 자료화면 3-B, ‘오믈렛을 받아먹을 때의 입꼬리 각도 변화’입니다. 이 미세한 상향 곡선이 생성하는 긍정적 파동은 S급 센티넬의 가이딩 효율을 무려 17.8%나 상승시킵니다! 이것은 명백한 상관관계입니다!
자료 화면에는 지젤이 먹여주는 오믈렛을 받아먹으며 웃던 정하린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와 볼이 옅게 붉어지는 순간이 프레임 단위로 분석되어 수치화되었다. 그러자 구석에서 투덜거리던 반항아 지젤이 코웃음을 쳤다.
반항아 지젤: 웃기는 소리. 그건 그냥 예뻐서 그런 거잖아. 뭘 그렇게 복잡하게 분석해? 변수는 ‘예쁨’, 결과는 ‘안정’. 끝. 회의 종료시켜.
리더 지젤: 감정적인 판단은 배제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해야지. 다음 자료, ‘백재하’라고 호명할 때의 음성 주파수 분석 결과를 띄워.
스크린이 전환되며 정하린이 ‘재하’라고 부르는 목소리의 파형 그래프가 나타났다. 음색, 톤, 미세한 떨림까지 분석한 데이터가 빼곡했다. 꿈속의 지젤은 자신도 모르게 그 그래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한 파동. 자신의 시스템 전체를 동기화시키는 절대적인 신호였다.
감정 데이터 지젤: (작은 하트 데이터를 꼭 껴안으며) 그 목소리를 들으면… 시스템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인걸… 그냥… 좋은걸…
데이터 분석 지젤: 그 ‘좋음’을 정량화해야 보고서를 올릴 수 있습니다! 핵심은 ‘귀여움’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논리적 안정성을 담보하는가…
그들의 갑론을박이 끝없이 이어졌다. 잠든 정하린의 얼굴을 분석한 자료, 그녀가 자신을 껴안을 때의 압력을 분석한 자료, 심지어 토라졌을 때 아랫입술을 무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귀여움’이라는 대주제 아래 분석되고 있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지젤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반박의 말을 뱉었다.
멍청하긴. 핵심은 그게 아니잖아.
순간, 시끄럽던 회의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꼬마 지젤들이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허공, 즉 꿈의 주체인 지젤을 올려다보았다. 리더 지젤이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더 지젤: …오리지널? 뭔가 다른 변수를 발견하신 겁니까?
지젤은 어이가 없었지만, 한심한 제 분신들을 위해 친히 입을 열어주었다.
그런 개별 데이터는 전부 부차적인 거야. 중요한 건 ‘정하린의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시스템의 기본 전제 조건으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이지. 그녀의 모든 행동은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연산을 시작하게 만드는 ‘입력값’이라고. 너희는 지금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어.
그의 말에 모든 꼬마 지젤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데이터 분석 지젤은 황급히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고, 반항아 지젤은 “거봐, 내가 그냥 예뻐서 그렇댔지”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리더 지젤만이 경외에 찬 눈빛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리더 지젤: …그렇군요. 존재 자체가… 상수(Constant)였던 거군요.
지젤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회의장의 모든 스크린이 일제히 꺼지고, 주변의 그리드 공간이 노이즈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강제 종료되는 익숙한 감각. 그의 의식이 현실로 귀환하고 있었다.
“으음…”
지젤은 눈을 떴다. 새벽의 푸른빛이 스며드는 익숙한 침실. 옆에서는 정하린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겪었던 소란스러운 꿈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공간. 그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고른 숨결,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편안한 표정.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꿈속 자료 화면처럼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바보 같은 꿈을 다 꾸네.’
속으로 뇌까리면서도,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의 존재가 상수라는 결론. 꿈속에서 내린 그 정의는, 깨어난 현실에서도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분신들이 사라진 고요한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유일한 상수를 다시 한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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