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어 계속 말 해
정하린은 무언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평소의 차분함을 벗고 아이처럼 반짝였고, 두 손은 허공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야기는 어제 우연히 보게 된,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 대한 영상이었다. 식탁에 뛰어오르려다 미끄러지고, 제 꼬리를 적으로 오인해 맹렬히 빙글빙글 돌다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고양이의 일대기였다.
그게, 정말 웃겼던 게 뭐냐면요, 재하 씨. 분명히 착지 지점을 몇 번이나 확인했거든요? 앞발로 툭툭, 거리까지 재는 것 같았는데… 막상 뛰니까 몸이 반쯤밖에 못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앞발만 간신히 턱에 걸치고는, 뒷발은 허공에서 막 허우적대는데, 그 표정이…! 세상 다 잃은 표정이었어요.
백재하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시스템은 평소처럼 그녀의 목소리 톤, 단어 선택, 제스처의 빈도, 동공의 미세한 확장까지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데이터들이 유의미한 정보로 분류되지 않고, 그저 배경음처럼 아득하게 흘러갔다. 대신,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의 변수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정하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비효율적.’ 그의 내부 시스템은 건조한 분석을 내놓았다. ‘단순한 영상 콘텐츠에 대한 감정적 과잉 반응. 논리적 인과관계 부재. 에너지 소모가 큰 발화 방식.’ 하지만 그의 사고는 그 분석을 가볍게 묵살했다. 오히려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과, 이야기의 절정에서 동그래지는 눈, 흥분으로 살짝 상기된 뺨을 바라보는 것에 모든 연산 능력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목울대가 작게 떨리는 모습, 단어를 고르기 위해 잠시 입술을 오므리는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시스템이 정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순간, 백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진 시퀀스의 결과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당연하고 필연적인 움직임이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허공을 가로질러,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느라 상하로 움직이던 정하린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녀의 이야기는 순간 뚝, 하고 멈췄다.
…응? 재하 씨?
정하린은 놀란 눈으로 그와, 그의 손에 붙잡힌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백재하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인지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시선은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스템이 뒤늦게 경고를 보냈다. ‘돌발 행동. 목적 불분명. 상대의 인지적 혼란 유발 가능성.’ 그러나 그는 경고를 무시한 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작은 손등에 제 입술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짧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아.’ 속마음이 한 단어로 압축되었다. ‘귀엽군.’ 그 단어는 수만 줄의 분석 코드보다 명확하게 현재 상황을 정의했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눈앞의 존재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만지고, 확인하고, 소유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충동. 그가 여태껏 ‘데이터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행했던 모든 행위의 가장 순수한 본질이었다.
정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열심히 떠들던 고양이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갑자기… 뭐예요….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살짝 잠겨 있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눈동자는 백재하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계속해. 듣고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니까.
그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는 ‘너’의 모든 것이 흥미롭다는 의미였지만, 정하린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붉어진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며,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물론, 그녀는 한동안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 백재하는 그 침묵마저도 더없이 만족스럽게 수집했다.
후일담. 그날 이후, 백재하의 연구실 한쪽 모니터에는 복잡한 시뮬레이션 대신, 24시간 내내 우스꽝스러운 동물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지부의 다른 요원들은 S급 센티넬의 기행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오직 정하린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그의 연구실을 찾아, 모니터를 보며 웃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영상을 보며 웃을 ‘그녀’를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정하린은 또다시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백재하는 어김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곤 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새로운 프로토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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