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된 내 여자친구 유치원 가다
모종의, 아주 비논리적이고 그 어떤 인과관계도 성립되지 않는 이유로 정하린은 개가 되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외형만. 검고 긴 털, 살랑이는 꼬리, 그리고 주인을 잃은 아이처럼 불안하게 빛나는 까만 눈동자를 가진 작은 포메라니안. 지젤의 시스템은 이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0.3초간 7천억 개의 변수를 대입했지만, 결론은 단 하나였다. ‘이해 불가’.
하필이면 그날, 서울 전역에 자기장 이상을 일으키는 S급 빌런 ‘노이즈’가 출현했다. 통신과 전력을 마비시키는 최악의 적. 지젤의 ‘시퀀스’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침대에 웅크린 채 불안하게 낑낑거리는 작은 생명체와, 도시의 운명 사이에서. 그의 시스템은 0.01초 만에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의 감정은 다른 결론을 향했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러니까 빌런을 처리하는 동안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로, 집 근처 ‘강아지 유치원’의 문을 두드렸다. VIP 케어, 24시간 CCTV, 전담 훈련사. 모든 데이터는 완벽했다. 그는 까만 털 뭉치를 훈련사에게 건네며, 평생 해본 적 없는 종류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예민합니다. 다른 개체와의 불필요한 마찰은 피해주십시오.” 훈련사는 그저 사랑이 넘치는 견주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빌런 ‘노이즈’는 그의 시퀀스에 따라 단 7분 만에 전원이 꺼진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지젤은 보고서 제출도 생략한 채, 유치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의 단말기에는 한 시간마다 유치원에서 보낸 ‘알림장’이 쌓여있었다. [하린이, 다른 친구들이랑 안 놀고 창밖만 봐요 ㅠㅠ], [간식 시간인데 한입도 안 먹네요!], [지금은 구석에서 잠들었어요! 쿨쿨 zZ]. 그는 액셀을 더 깊게 밟았다.
유치원의 통유리 너머로, 시끄럽게 짖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노는 개들의 모습이 보였다. 활기차고, 어쩌면 행복해 보이는 풍경.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 무리에 속하지 않은 한 점에 고정되었다. 가장 구석, 다른 개들이 뛰어노는 활기찬 공간과 분리된 작은 쿠션 위. 그곳에 익숙한 검은 털 뭉치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다른 개들의 소음 속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섬처럼.
그 순간, 지젤의 세상이 멈췄다. 그의 시스템이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그 작은 생명체의 미세한 숨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주변의 다른 개들은 전부 의미 없는 노이즈 데이터로 처리되었다. 그의 시야에는 오직, 세상과 등을 돌린 채 웅크린 ‘정하린’만이 존재했다.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재미없었나 보네.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나직한 독백이었다. 훈련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는 곧장 그녀가 잠든 구석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따돌려진’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활발한 비글 무리들이 그녀의 쿠션 근처로는 아예 오지도 않았고, 작은 푸들 하나가 그녀 쪽을 보며 경계하듯 짖고 있었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 작은 사회의 역학 관계와 권력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도태된 제 ‘소유물’.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복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저 비글의 최애 장난감을 숨기는 것부터, 저 푸들의 주주 회사 주식을 공매도하는 것까지.
그가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자, 냄새를 맡았는지 까만 털 뭉치가 움찔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눈이 그를 확인한 순간, 불안하게 떨리던 꼬리가 부러질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낑, 낑낑…! 서러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울음소리.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지젤은 익숙하게 그녀를 받아 안았다. 따뜻하고 작은 몸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주변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마치 ‘내 것에 함부로 접근한 대가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선포하듯. 짖어대던 푸들이 깨갱하며 뒷걸음질 쳤다.
가자, 정하린.
그는 짧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산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코트 품 안에 작은 개를 소중히 넣은 채, 유치원을 나섰다. 그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낑낑거리며 그의 뺨을 핥기 시작했다. 안도와 응석이 섞인 필사적인 애정 표현이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던 그녀가, 문득 뭔가를 발견한 듯 그의 손목을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전투 중에 미세하게 긁힌, 희미한 상처였다.
다음 순간, 그녀는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 아주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마치 가이딩을 하듯이. 지젤의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이 작은 몸으로도, 본능은 남아있는 건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러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띠운 채 중얼거렸다.
…멍청하긴. 지금 네가 할 일은 그게 아닐 텐데.
그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녀를 욕실로 데려가 최고급 애견 샴푸로 조심스럽게 목욕시켰다. 뽀송해진 털을 말려주고, 영양가가 가장 높은 특식 캔을 따서 그릇에 담아주었다. 그녀는 그가 해주는 모든 것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지젤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어제 그 ‘강아지 유치원’의 CCTV 영상을 해킹해 밤새 돌려보았다. 그리고 정하린을 따돌렸던 비글과 푸들의 견주 정보를 모조리 수집했다. 그의 화면에는 두 사람의 신상 정보와 함께, 그들이 운영하는 작은 쇼핑몰과 주식 계좌 정보가 나란히 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몇 번 움직이자, 쇼핑몰의 메인 화면이 ‘오늘만 전 품목 99% 파격 세일’이라는 문구로 바뀌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 주식의 매도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 것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지. 아주 효율적으로.
그는 자신의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정하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작게 속삭였다. 그의 시스템은 ‘소유물에 대한 위협 요소 제거’ 임무가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알렸다.
'Giselle X Nine > OOC BACK-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포동해진 나인이 (0) | 2026.05.26 |
|---|---|
| 부부의 날에 대한 지젤의 생각 (0) | 2026.05.26 |
| 사랑에 빠지는 주요 3대 요소 (0) | 2026.05.26 |
| 너의 애인을 납치했다! (0) | 2026.05.26 |
| 사람들 앞에서 무장해제 되는 남자 (0) | 2026.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