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 무장해제 되는 남자
지부의 오후는 언제나 미세한 소음과 분주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 복도를 오가는 구둣발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빌런 출몰 경보까지.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 있는 S급 센티넬, 지젤의 개인 연구실은 언제나 그 혼돈과 완벽하게 분리된, 고요한 폭풍의 눈과 같은 장소였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지부장 K가 신입 연구원들을 대동하고 지젤의 연구실을 ‘참관’하러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명목은 S급 센티넬의 데이터 분석 환경 견학이었지만, 실상은 ‘요즘 지젤이 좀 유해졌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고픈 지부장의 얄팍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문이 열리고, 쭈뼛거리며 들어선 신입 연구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문 속의 그, 코드네임 지젤이었다.
그는 여전히 새하얀 실험복에 검은 셔츠 차림이었고,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흑안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모든 신경과 시선이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소파, 그리고 그곳에 앉아 태블릿을 넘겨보고 있는 제 페어, 나인에게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주변에 떠 있어야 할 반투명한 HUD 인터페이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상대를 분석할 때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스듬한 고갯짓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태블릿에 집중하던 나인이 문득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작게 웅얼거렸다.
아, 배고파.
그것은 누구를 향한 말도 아닌, 그저 무심코 터져 나온 혼잣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말이 지젤의 귀에 닿는 순간, 그는 마치 최상위 프로토콜 명령을 수신한 안드로이드처럼 즉각 반응했다. 그는 K와 신입 연구원들이 바로 앞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몸을 돌려 개인 냉장고로 향했다. 잠시 뒤, 그의 손에는 딸기 맛 영양 푸딩과 작은 스푼이 들려 있었다. 그는 소파로 성큼성큼 걸어가 나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자연스럽게 푸딩 뚜껑을 뜯었다.
정하린, 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명령도, 조롱도, 계산된 유희도 아니었다. 그저,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 새와 같은 순수한 권유. 나인은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지젤은 스푼으로 푸딩을 작게 떠서,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가 떠먹이는 과정에서 푸딩 조각 하나가 그녀의 입가에 살짝 묻었다. 지젤은 즉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 작은 흔적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 모든 과정은 너무나 부드럽고, 군더더기 없었으며, 마치 수백 번은 반복된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부장 K와 신입 연구원들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들이 알던 지젤은 ‘느려져서 싫다’며 안정제조차 거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비용 대비 효용으로 계산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페어의 배고프다는 혼잣말 한마디에 모든 사고를 정지하고 푸딩을 떠먹여주고 있다니. 심지어 나인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다음 임무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
한 신입 연구원이 용기를 내어,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K에게 물었다.
저... 지부장님, 원래 S급 센티넬은... 다 저런가요? 가이딩의 일환이라던가...
K는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저건 가이딩이 아니라 사육이야...
푸딩 한 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만족한 듯 나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방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듯, 그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그리고는 지젤의 헝클어진 넥타이를 발견하고는, 무심하게 손을 뻗어 매듭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텅 비어 있던 지젤의 눈동자에, 아주 희미하고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드럽게 휘었다. 그것은 그의 시스템이 다운되고, 모든 계산이 멈춘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오직 ‘정하린’이라는 변수 앞에서만 허락된 미소였다.
나인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지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넥타이 삐뚤어졌길래.
나인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그곳에 있던 제3자들에게는 명백한 ‘사건’이었다. Fearless 지부에서 가장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했던 전술 병기가, 한 가이드 앞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무장해제되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 그날 이후, 지부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젤을 화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가 푸딩을 떠먹일 때 방해하는 것이라는, 아주 실용적인 정보였다.
💭 속마음: (배고팠구나. 더 가져다줄까. 아, 주변에 먼지들이 좀 있네. 빨리 처리해야겠다.)
🔍 하고 싶은 것: [1] 딸기 푸딩 1년 치 주문하기 [2] 방해꾼들(K와 신입들) 내보내기 [3]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눕기
💬 NPC TMI: 그의 개인 냉장고의 80%는 이제 각종 영양 겔 대신 그녀가 좋아할 만한 간식들로 채워져 있다. 지젤 본인은 정작 그 간식들의 맛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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