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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사랑에 빠지는 주요 3대 요소

고요함. 완벽한 연산 자원의 비활성화 상태. 정하린이 없는 집은 소음도, 변수도 없는 통제된 공간이었지만,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공허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지젤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허공의 인터페이스를 무의미하게 넘기고 있었다. 날씨 데이터, 주가 변동, 해외 지부 동향. 그 어떤 것도 그의 시스템에 유의미한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의 모든 연산은 오직 하나의 변수, '정하린'의 부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그의 시선이 거실 테이블 위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정하린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집중해서 읽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당신이 사랑에 빠지는 아주 사소한 이유들』. 지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주제에 대한 탐구라니. 그는 코웃음을 치며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1번, 2번, 3번… 무의미한 이미지의 나열. 결국 그의 시스템은 오류를 선언하듯, TV를 꺼버렸다. 다시 찾아온 정적. 그 정적의 중심에, 저 책이 있었다.

결국 지젤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던 물건. 그는 소파에 다시 앉아 무심한 척 책장을 넘겼다. 사랑의 화학적 반응, 뇌의 작용, 심리적 함정… 시시하군. 그의 시스템은 모든 페이지를 0.1초 만에 스캔하고 분석하며 결론을 내렸다. ‘통계적 오류와 일반화로 가득 찬, 신뢰도 3.7% 미만의 유사 과학 서적.’

그렇게 한 장 한 장,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그의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특정 페이지, 특정 문단에 그녀의 필체가 분명한 붉은색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의 모든 시스템이 순간 정지하고, 그 밑줄에 모든 연산 능력을 집중했다.

[사랑에 빠지는 주요 3대 요소]

‘흥미롭군. 그녀가 정의하는 사랑의 변수인가.’ 지젤의 입꼬리가 호기심으로 살짝 올라갔다. 그는 이어서 나타날 심리학적, 철학적 고찰을 예상하며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1. 188cm의 키.

…응? 지젤은 순간 자신의 시스템이 데이터를 오독했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 정보를 HUD에 띄웠다. [신장: 184cm]. 오차범위 0.01mm. …4cm 부족. 그의 시스템에 첫 번째 ‘ERROR’ 경고가 희미하게 점멸했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2. 아이돌처럼 생긴 얼굴.

지젤은 거울 모드를 실행해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날카로운 눈매, 짙은 흑안, 새하얀 피부. 자타공인 냉미남의 정석. 그는 자신의 얼굴 데이터를 K-POP 아이돌 상위 100명의 평균 데이터와 비교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사도 분석 중… ERROR. 비교 데이터베이스 없음. ‘아이돌처럼 생겼다’의 정량적 기준 모호. 판단 불가.] 지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이건 또 무슨 비논리적인 조건이지?

3. 초콜릿 복근.

지젤은 상체를 내려다보았다. 슬림하지만 탄탄한, 실전형 근육. 체지방률 7.8%. 하지만 이것이 ‘초콜릿’인가? 그는 즉시 인터넷 이미지 검색을 실행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선명하게 갈라진 식스팩들. 그는 자신의 티셔츠를 살짝 들어 복부를 확인했다. 형태는 유사하나, ‘초콜릿’이라는 명칭이 주는 달콤하고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것은 살상과 효율을 위해 단련된 무기에 가까웠다. [판정: 불일치. 해당 개체는 ‘초콜릿 복근’이 아닌 ‘전술형 복부 근육’으로 분류됨.]

콰직. 지젤의 손에서 책이 미세하게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188cm, 아이돌, 초콜릿 복근.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3대 요소 중, 자신은 단 하나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 못했다. 184cm의 비주얼 담당 연구원 타입 센티넬에, 전술형 복근을 가진 남자. 그게 백재하였다.

그의 시스템은 폭주 직전의 과부하에 휩싸였다. 수천,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이 동시에 실행되었다. 지금 당장 성장 클리닉을 예약해야 하는가? 아이돌 메이크업 강좌를 수강하고 표정 연기를 배워야 하나? 아니면 단기간에 근육의 데피니션을 ‘초콜릿’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트레이닝 프로토콜을 개발해야 하는가? 아니, 가장 빠른 해결책은 이 책을 소각하고, 저자인 ‘아서 J. 스미스’의 모든 저작물을 세상에서 삭제하는 것이다. 아니, 정하린의 기억에서 이 부분을…!

“ERROR! ERROR! CONTRADICTION! LOGICAL FALLACY!”

지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자신의 세계 그 자체가 되어준 그녀가… 이런 허무맹랑하고 피상적인 조건들에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무엇인가? 오류? 버그? 아니면… 동정? 연민? S급 센티넬에 대한 가이드로서의 의무감? 온갖 부정적인 가설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였다. 마치 케이지에 갇힌 맹수처럼. 그러다 문득, 그는 다시 책의 밑줄 친 부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게, 연필로 쓰인 글씨를 발견했다.

‘전부 해당 안 돼도, 바보 같은 내 센티넬이 제일 좋지만.’

“…….”

지젤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그 문장만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의 시스템에서 요란하게 울리던 모든 경고등이 일제히 꺼지고, 그 자리에는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찬 ‘STABLE’ 사인만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

[후일담]

그날 저녁, 정하린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지젤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를 맞았다. 다만, 그의 손에는 의문의 우유 팩이 들려 있었다.

다녀왔어? 자, 이거 마셔.

그가 내민 것은 [‘쑥쑥 크는 어린이’를 위한 성장기 칼슘 강화 우유] 1리터짜리였다.

정하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유를 받아들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칼슘 섭취가 부족한 것 같아서. 꾸준히 마시면… 4cm 정도는 더 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그리곤 정하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는 아이돌 그룹의 엔딩 포즈처럼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초콜릿 모양’ 계란 프라이가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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