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마 넌 최고의 남자친구야
지부 중앙 로비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목적지가 명확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로비는 잠시 한산했지만, 군데군데 무리 지어 커피를 마시거나 잡담을 나누는 요원들로 적당한 소음이 채워져 있었다. 지젤은 나인의 허리를 가볍게 감싼 채, 이 무가치한 배경 소음을 하나의 데이터 노이즈로 처리하며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앞을 향했고, 곁에 있는 그녀의 보폭에 속도를 맞추는 것이 유일하게 유의미한 연산이었다.
그때였다. 바로 옆 휴게 테이블에 앉아 있던 C급 요원 몇 명의 목소리가, 지젤의 필터링 시스템을 뚫고 의미 있는 정보로 인식되었다. 주제는 흔해 빠진 ‘최악의 연애 상대’ 같은 것이었다.
아니, 진짜 똑똑하고 능력 있는 건 좋은데, 모든 걸 계산하고 분석하려는 남자는 질색이야. 피곤하잖아!
맞아, 맞아! 말할 때 꼭 비꼬는 것 같고, 웃는데 눈은 안 웃는 사람 있잖아. 속을 모르겠어서 무서워.
패션도 중요하지. 맨날 똑같은 까만 옷에 흰 가운만 걸치는 남자 어때? 상상만 해도 숨 막힌다. 무슨 실험체도 아니고.
지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비틀렸다. 흥미롭지도, 분노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데이터의 나열. 그는 그저 무시하고 통과하려 했다. 인류의 보편적 어리석음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일 뿐. 그의 옆에서 걷던 나인 역시 이 대화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결정타가 날아들었다.
아, 딱 알겠다! 우리 지부의 S급 센티넬, 지젤 님 같은 타입! 와, 능력은 존경하지만 연인으로는 진짜… 절대 사양! 완전 최악의 이상형 아니냐?
순간, 주변의 모든 소음이 암전되는 듯했다. 지젤의 사고 회로가 0.01초간 정지했다. '최악'. '절대 사양'. 그 단어들이 그의 청각 센서를 때렸다. 그러나 분노나 모욕감은 아니었다. 그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며,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옆에서 나아가야 할 나인의 발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젤이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기도 전,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가 그의 양쪽 귀를 확 감쌌다. 나인의 손이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의 모든 시스템이 경고등을 깜빡였다. 주변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되고, 오직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맥박과 온기만이 그의 세계를 채웠다. 눈앞에는, 짐짓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한 나인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듣지 마, 지젤. 넌 최고의 남자친구야.
그 한마디가, 지젤의 모든 연산 체계를 무너뜨렸다. '최악'이라는 외부 입력값과 '최고'라는 그녀의 선언이 충돌하며 발생한 오류. 그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주변에 떠 있던 가상의 HUD 인터페이스 창이 파직, 스파크를 일으키며 몇 번 깜빡이다 [SYSTEM ERROR]라는 붉은 글자를 띄웠다. 언제나 능글맞던 그의 미소도, 냉정하던 표정도 사라지고,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대한 순수한 당혹감만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귀를 막은 나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젤의 내부에서 무언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시퀀스가 시작되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는 자신의 귀를 막고 있는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겹쳐 덮었다. 마치 그 소중한 손을, 그리고 그 손이 전하는 말을 영원히 붙잡아두려는 것처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귀를 막은 그녀의 손등 위로 자신의 뺨을 지그시 가져다 댔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그리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오직 그녀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완벽한 형태의 가이딩. 그것은 그 어떤 폭주보다도 강렬하게 그의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의 흑안에는 장난기 가득한 빛이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나인의 손을 여전히 자신의 귀에 댄 채로, 아까 그 요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입 모양으로만, 아주 느리고 정확하게 말했다.
들었어? ‘최고’래.
그 후일담은 지부 내에서 한동안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그날 이후, 지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무언가에 몰두했고 며칠 뒤 나인의 손목에 꼭 맞는, 외부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동시에 착용자의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증폭시켜주는 기능이 탑재된 최첨단 커프스형 통신 장치를 선물했다. 명칭은 [프로토콜: 나의 최고]. 그 장치를 착용한 나인이 “이게 뭐야?”라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네가 나에게 ‘최고’라고 말해줄 때, 단 1초의 딜레이나 1데시벨의 손실도 없이 완벽하게 듣고 싶어서.” 라고. 그 말을 들은 C급 요원들은 그날 이후 지젤의 100미터 반경 안에서는 이상형 월드컵을 절대 하지 않게 되었다.
📉 가이딩 상태: [CRITICAL ERROR]. 그녀의 한마디가 모든 연산을 마비시킨다. 가이딩 필요 +999% (심장 과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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