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으로 뭐 했어?
별장의 아침은 끈적한 시럽처럼 달콤하게 녹아 흘렀고, 다시 돌아온 도시의 시간은 정확한 격자무늬 위를 걷는 것처럼 건조하고 빠르게 흘렀다. 월급날을 며칠 앞둔 저녁,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었다. 정하린은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 사이트를, 백재하는 이해 불가능한 수식으로 가득 찬 암호화폐 시세 그래프를 띄워놓고 있었다. 목적지는 달랐지만, 도착지는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같았다.
정하린은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문득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까만 안경 렌즈 위로 현란한 숫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 남자는, 돈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모든 것을 데이터와 효율로 계산하는 저 머릿속에서, 노동의 대가라는 원시적인 시스템은 어떤 변수로 취급될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질문으로 응축되었다.
재하 씨는, 첫 월급으로 뭐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백재하의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을 가득 채웠던 그래프의 움직임도 함께 정지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질문의 의도를 분석하듯 가늘어졌다. ‘첫 월급’이라는 단어는 그의 데이터베이스 아주 깊은 곳, 지금은 거의 열람하지 않는 오래된 아카이브에 저장된 파일명이었다. 먼지 쌓인 기록을 불러오는 데에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첫 월급.
그의 입술이 그 단어를 소리 내어 반복했다. 그것은 단순한 복창이 아니라, 오래된 암호를 입력하는 행위와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재하의 시선이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현재의 시간은 빛을 잃고 과거의 풍경이 홀로그램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첫 월급은 센티넬 ‘지젤’이 아닌, 양자물리학 박사과정 연구원 ‘백재하’의 것이었다. 각성하기 한참 전, 그의 세상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수식과 이론으로만 채워져 있던 시절. 그의 손에 처음으로 쥐어진, 노동의 대가라기엔 너무나 미미했던 연구 장학금. 그는 그 돈을 들고 망설임 없이 학교 앞의 낡은 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엔 그가 몇 달 동안 눈독 들이던 책이 있었다.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비공식적으로만 유통되던, 잊힌 수학자의 마지막 논문집. ‘불확정성의 원리를 넘어서는 인과율의 통합 모델에 대한 고찰’. 대부분의 학자가 이단 취급하며 외면했지만, 어린 백재하에게 그것은 신의 설계도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첫 월급 전부와, 가지고 있던 용돈까지 전부 털어 빛바랜 하드커버의 논문집을 손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밤을 새워 논문집을 읽었다. 잉크 냄새와 낡은 종이 냄새가 방 안을 채웠고, 그의 눈은 광적으로 페이지를 훑었다. 세상의 모든 불규칙과 무질서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법칙, 모든 원인과 결과를 엮어내는 거대한 시퀀스. 논문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돈으로 ‘미래’를 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증명해야 할,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완성해야 할 세계의 설계도를.
그것이 그의 첫 소비였다. 감상이나 추억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지적 유희와 오만함을 증명하기 위한 투자.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었던 한 젊은 학자의, 가장 순수하고 이기적인 욕망의 발현.
긴 회상에서 돌아온 백재하의 눈이 다시 초점을 찾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하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입가에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가 걸렸다.
세상을 전부 사려고 했지. 아주 낡고, 비싼 책 한 권으로.
그는 대답 대신, 곁에 놓여 있던 정하린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이 그의 서늘한 피부에 닿았다.
결국엔 실패했지만. 그 책보다 훨씬 비싸고,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여기서 찾아버렸으니까.
그의 시선이 오롯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첫 월급으로 샀던 낡은 책은 결국 서재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이제 그의 유일한 연구 대상이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전부를 알고 싶은 유일한 세계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번 월급은 어디에 쓸까. 네 시간의 1초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전부 투자할 의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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