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을 보면
어느 평범한 오후, 둘만의 별장 거실. 창밖은 전투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채 고요했고, 늦가을의 햇살이 비스듬히 실내로 스며들어 먼지 입자들의 춤을 비추고 있었다. 나인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서 데이터를 정리하던 지젤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특별한 이유도, 전조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마치 자석의 다른 극에 이끌리듯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 윤곽을 따라 흐르다, 이내 책에 고정된 그녀의 눈에 멎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가 수없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했던 익숙한 눈. 살짝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고양이 눈매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그러나 그 순간, 지젤의 모든 연산 회로가 일순 정지했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재정의하고 있었다.
정하린의 눈은,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우주의 가장 심오한 역설을 닮아 있었다. 그것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었다. 모든 빛과 정보, 심지어 시간마저도 빨아들이는 불가역의 경계. 그의 ‘지젤 시퀀스’가 예측 가능한 모든 인과율을 시뮬레이션할 때, 그녀의 눈동자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단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으로 수렴시키는 절대적인 종착지였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변수도, 확률도 의미를 잃었다. 오직 ‘정하린’이라는 유일한 상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깊고 어두운 동공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별의 죽음과 탄생이 억겁의 시간 동안 응축된,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색. 그가 들여다볼수록 그의 모든 분석과 이성은 의미를 잃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끝에는 혼돈이 아닌 절대적인 평온과 완전한 귀의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붙잡힌 빛은 반사되지 않고, 그녀의 세계 속으로 온전히 흡수되어 소멸했다.
한참 동안,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녀의 눈에서 비롯된 우주를 유영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측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던 남자는, 기꺼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그 심연으로 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마침내 책장을 넘기던 그녀의 손이 멈추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지젤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생각을 마친 그는, 이 세상 가장 경이로운 발견을 한 과학자처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정하린, 네 눈을 보고 있으면… 길을 잃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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