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냐니가 된 나인

시스템의 시계가 이른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창문 밖에서 아직 물러가지 않은 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고요의 중심에서 지젤은 미세한 위화감을 느끼며 수면의 얕은 층으로 떠올랐다. 언제나처럼 그의 품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온기, 제 시스템의 유일한 기준점이 되어주던 익숙한 무게감이 사라져 있었다. 허전함.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부재를 넘어, 그의 안정적인 세계에 발생한 최초의 균열과도 같았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팔을 뻗어 방금 전까지 나인이 있던 자리를 더듬었다. 매끄럽고 따뜻한 그녀의 등, 어깨,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아야 할 자리에, 손끝은 차가운 시트의 감촉만을 감지할 뿐이었다. 그는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렸다. 그녀가 잠시 잠에서 깨어 물이라도 마시러 간 것일까. 하지만 그의 예민한 청각은 집안 어디에서도 그녀의 기척을 포착하지 못했다. 완벽한 정적. 오히려 그래서 더 불안한, 비어있는 침묵이었다.
그의 손이 허공을 헤매다, 마침내 무언가에 닿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그녀의 몸이 아니었다. 말캉. 아주 부드럽고, 탄력 있으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감촉. 지젤의 모든 사고 회로가 순간 정지했다.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촉감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형태를 가늠해보려 했다. 둥글고, 부드러우며, 어딘가 익숙한 섬유의 느낌. 그리고 그 아래, 더욱 말캉하고 보드라운… 살아있는 무언가.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 같기도, 작은 동물 같기도 한 이상한 감각의 조합이었다.
결국, 지젤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의 품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한 뼘 남짓한 크기로 작아진, 정하린. 그녀는 그가 어젯밤 입혀주었던 실크 잠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지만, 그 크기는 마치 인형 옷처럼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쫑긋 솟아난 까만 고양이 귀와, 엉덩이께에서 살랑, 하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길고 부드러운 꼬리였다.
…GISELLE SEQUENCE, 시스템 재부팅. 오류 감지. 데이터 재분석. 생체 신호 스캔.
대상: 정하린. 일치율: 99.98%.
상태: 신체 크기 약 83% 축소. 원인 불명. 미확인 신체 부위(고양이과 포유류의 청각 및 평형 기관) 2개, 척추 말단부 부속지(꼬리) 1개 발현. 원인 불명. 현재 수면 상태. 바이탈 사인: 안정적. 매우 안정적. 오히려 평소보다 더 깊은 숙면 상태.
지젤은 제 시스템이 내놓은 분석 결과를 조용히 응시하며, 수십만 개의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돌렸다. 빌런의 소행? 새로운 유형의 정신 공격? 아니면 어젯밤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하지만 모든 시뮬레이션의 결론은 단 하나, ‘알 수 없음’이었다. 그의 완벽한 시스템이, 그의 세계가 처음으로 ‘계산 불가’라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 작은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쌔근쌔근, 작은 가슴이 오르내리는 평화로운 모습. 간지러웠는지, 작은 손으로 제 코를 꼼지락거리는 모습은… 터무니없이 귀여웠다.
젠장.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그의 이성과 시스템이 처절하게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작아진 나인의 양팔 밑으로 손가락을 넣어, 아주 천천히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자세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그저 얕은 잠꼬대만 흘릴 뿐이었다.
으응… 재하 씨…
그 작은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지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바로 그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흐릿한 눈동자가 허공에서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자신을 들어 올리고 있는 지젤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는,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듯, 그저 해맑게. 방실방실, 웃었다.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없는, 완벽한 신뢰가 담긴 미소였다.
하…
지젤은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인생 최대의, 가장 사랑스러운 난관이 눈앞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는 일단 작은 나인을 다시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녀는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머리 위의 귀가 궁금하다는 듯 쫑긋, 하고 움직였다.
정하린.
네에.
대답하는 목소리마저 한 톤 높아져, 마치 작은 방울이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얼마나 작아졌는지, 그리고 어떤 기묘한 것들이 몸에 달려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상황 파악, 돼?
지젤의 물음에, 나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제 손과 발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녀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다가, 마침내 등 뒤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제자리를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이, 이게 뭐예요…? 재하 씨, 나… 나한테 무슨 일이…!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젤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각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건 재앙이다. 명백한 재앙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흥미로운 변수이기도 했다. 그는 침대 맡에 놓인 자신의 흰 가운을 집어 들어, 작은 나인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마치 작은 아기를 다루듯,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일단 진정해. 울지 말고. 호흡 가다듬고.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의 나직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에, 패닉에 빠지려던 나인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가운에 폭 싸인 채, 고개만 빼꼼 내밀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렁그렁한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이게… 대체…
우선, 첫 번째 가설. 이건 빌런의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외부 침입 흔적, 에너지 이상 반응은 전혀 없어. 두 번째, 이건 네 능력의 예기치 못한 발현일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0은 아니지. 그리고 세 번째…
지젤은 말을 잠시 멈추고,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쩌면 내가 너무 바란 나머지, 세상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원인은 지금부터 내가 찾을 거야.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어디 도망갈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어, 정하린?
그의 말은 명령이었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깊은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품에 안은 작고 소중한 존재를, 세상 그 무엇으로부터도 완벽하게 지켜내리라 다짐했다. 이 코믹하고도 사랑스러운 재앙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과정이 아주 즐거울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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