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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짝사랑의 비극적 사랑은 언제나 좋은 법입니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로 붐비는 바 안에서, 내 세상은 오직 투명한 잔과 그 너머로 웃고 있는 너, 단 두 가지로 압축되어 있었다. 술기운이 기분 좋게 머리를 흔든다고, 너는 말했다. 나는 그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너의 얼굴을, 한 조각이라도 더 담아두려는 사람처럼.

내 머릿속의 모든 시뮬레이션이 멈췄다. 수만 가지 변수와 경로를 계산하며 살아왔는데, ‘정하린의 결혼’이라는 단 한 가지 변수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또 한 번, 독한 술을 그대로 목 안으로 털어 넣었다. 타는 듯한 감각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이 끔찍한 현실에 발 딛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가지 마.

결국, 필터링 없는 단어가 멋대로 튀어나왔다. 웃으며 무언가 말하려던 너의 입술이 멈추고,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의 통제력을 잃어, 잔과 테이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공간을 갈랐다.

가지 말라고, 내일.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네게로 다가갔다. 네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는 게 느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네 의자 양옆을 손으로 짚어, 도망갈 곳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 술기운에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너의 흔들리는 눈동자만은 선명했다.

다 취소해. 그냥 없던 일로 해. 장난이었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한테 와.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내가… 전부 다.

목소리가 잠겨 나왔다. 너를 내려다보는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평생을 지켜온 이성과 통제력이 액체처럼 녹아내려 발밑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 약속했잖아. 나랑 결혼하겠다고. …나는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 우스운 약속 하나를 내 모든 계산의 전제로 깔아놓고, 너와 나의 미래를 설계했어.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새끼인지 알겠어?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네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뜨거운 손바닥 아래, 너의 피부가 차갑게 느껴졌다.

하린아. 제발. 내가 처음으로… 계산 없이 하는 부탁이야. 그 새끼한테 가지 마. 너는 내 옆에 있어야 돼. 처음부터, 그랬어야만 했어.

 

 

---------------------- 결혼 후

 

 

익숙한 얼음 부딪히는 소리, 잔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공기,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너. 모든 것이 예전과 같은데, 단 하나가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네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그 빌어먹을 반지. 그게 자꾸만 시야를 어지럽혔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 속이 뒤집혀서인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비워냈다. 독한 위스키가 목구멍을 태우고 내려가는 감각만이 유일하게 현실 같았다.

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이 추임새를 넣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모든 신경은 네 얼굴, 네 목소리, 그리고 너에게서 나는… 낯선 남자의 희미한 흔적에 곤두서 있었다. 머릿속의 모든 회로가 ‘왜?’라는 질문 하나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내지 않았을, 제법 큰 소리가 울렸다. 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재밌어?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지만, 나 스스로는 알 수 있었다. 모든 감정의 둑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너의 옆으로 다가갔다. 네가 앉은 소파 팔걸이에 한 손을 짚고, 너를 내려다보았다.

그 새끼랑 자는 건 재밌었어? 네가 다른 놈 밑에서 웃고, 울고, 매달리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데. 너는 행복해 보이네. 진짜로 행복해?

나는 허리를 숙여, 너의 얼굴 가까이로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술기운과 뒤섞인 내 숨결이 네 뺨에 닿았다. 너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그 표정. 내가 늘 보고 싶어 하던, 오직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그 혼란스러운 표정.

어릴 때 그랬잖아, 나랑 결혼할 거라고. 나는 그거 하나 믿고 지금까지 모든 걸 계산하고, 모든 걸 준비했는데. 정하린, 넌 그게 그냥 애들 장난이었어? 난 아니었는데. 단 한 순간도 장난이었던 적 없었는데.

내 목소리가 끝내 조금씩 떨려 나왔다. 나는 네 왼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네 손가락을 옭아맨 그 반지를, 내 엄지손가락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마치 지워버릴 수 있다는 듯이.

이거 빼. 그냥 다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시작하자. 응? 그 새끼한테 돌아가지 마. 너는 내 옆에 있어야지. 처음부터, 내 것이었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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