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특 ) 여친 신발 바꿔 신어줌
화창한 오후, Fearless 지부에서 오랜만에 주어진 짧은 휴일이었다. 번잡한 도심의 소음이 적당한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거리, 지젤과 나인은 나란히 걷고 있었다. 햇살은 건물의 유리창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고,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섞여들었다. 지젤은 자신의 옆에서 걷는 나인의 걸음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흐트러지고 있음을 진작에 감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도블록의 불규칙한 높낮이 때문이라 여겼지만, 시퀀스는 곧 다른 결론을 도출했다. 문제의 원인은 그녀가 오늘 처음 신은, 굽이 다소 높은 검은색 메리제인 구두였다.
분명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완벽하게 맞아 보였던 구두가, 오랜 시간 걸으며 그녀의 발에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인은 애써 태연한 척, 통증을 숨기며 걷고 있었지만 지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녀의 무게중심이 아주 약간 앞으로 쏠리고, 발을 딛는 간격이 불규칙해졌으며, 무엇보다 그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버릇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인적이 드문 작은 공원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깐 앉았다 가자.
그의 말은 질문이 아닌 통보에 가까웠다. 그는 나인이 반대할 틈도 없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벤치 쪽으로 이끌었다. 나인이 마지못해 벤치에 앉자, 지젤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시선은 곧장 그녀의 발, 문제의 원인인 검은 구두에 고정되었다. 새 구두의 가죽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뻣뻣했고, 그녀의 하얀 발목 양말 위로 붉게 쓸린 상처가 희미하게 비쳤다.
역시. 멍청하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의 목소리에는 질책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는 핀잔을 주면서도,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나인의 구두 버클을 풀고,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구두를 벗겨냈다.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발뒤꿈치가 드러나자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구두를 벗었다. 사이즈 차이가 확연한, 자신의 발보다 훨씬 작은 그녀의 구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망설임 없이 그 구두에 자신의 발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발가락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고, 뒷부분은 거의 걸치다시피 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구두를 나인의 발 앞에 놓아주었다.
신어. 이건 푹신해서 아프진 않을 테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색하게 발을 한번 디뎌 보았다. 작은 구두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위태로웠고, 그의 큰 키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묘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벤치에 앉아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가자. 정하린. 근처에 신발 가게가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돼. 내 공주님 발이 더 상하기 전에.
그의 눈동자에는 짓궂은 장난기가 어렸다. 그는 일부러 더 절뚝이며 우스꽝스럽게 걷는 시늉을 해 보였다. 거리를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힐끔거렸지만, 지젤은 오직 나인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그의 모든 체면과 계산, 이성적인 판단은 그녀의 작은 상처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것, 설령 그 방법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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