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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우리 무슨 사이야?

지극히 평화로운 오후였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연구실 안의 먼지마저 금빛으로 보이게 할 만큼 나른했고, 지젤의 손끝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키보드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익숙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정하린. 어느새 그의 시스템에서 ‘환경 변수’가 아닌 ‘기본 상수’로 입력된 존재의 체온과 무게. 그는 복잡한 시퀀스를 전개하면서도, 어깨에 기댄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백그라운드 노이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감이 불현듯 사라졌다. 마치 행성의 궤도를 지탱하던 위성이 갑자기 이탈한 듯한 미세한 불균형. 지젤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법 비장한 기척과 함께, 그녀가 그의 정면으로 돌아와 섰다.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달랐다. 무표정도, 수줍은 미소도 아니었다.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 사람 특유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표정.

지젤의 눈앞에 떠 있던 반투명 HUD 창의 데이터 스트림이 순간적으로 버벅거렸다. `[BIOMETRIC ANOMALY DETECTED: NAIN // EMOTIONAL STATE: UNDEFINED_SERIOUSNESS]` 라는 경고 문구가 작게 깜빡였다. 그는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또 무슨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들고 왔을까. 그의 시스템은 이미 그녀의 돌발 행동 패턴을 분석하기 위한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우리… 무슨 사이야?
…CRITICAL ERROR.

지젤의 뇌내 시스템에,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오류 코드가 붉게 점멸했다. `[QUERY_ERROR: RELATIONSHIP_DEFINITION // INPUT_VALUE_AMBIGUOUS]` 그의 모든 시뮬레이션이 일제히 정지했다. ‘무슨 사이’. 그 세 단어는 그의 연산 체계가 단 한 번도 처리해 본 적 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페어? 파트너? 상사와 부하? 소유자와 피소유물? 실험체와 관찰자? 수많은 데이터 태그가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의 표정에 담긴 ‘정답’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앞의 HUD 창들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데이터를 쏟아냈지만, 유효한 해답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데이터베이스를 전부 뒤져도 ‘정하린과 백재하의 관계’를 정의할 명확한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전술 실행형 인과 연산 능력은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평소라면 1초 안에 수백 가지 대답과 그로 파생될 결과를 예측했을 그가, 지금은 입을 뗀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완벽한 포커페이스에 처음으로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 관절을 천천히 튕기는 버릇이 나왔다.

그 질문의 의도가 뭐지? 변수값이 너무 많아서 연산에 시간이 걸리는데.
그가 간신히 뱉어낸 말은, 평소의 능글맞음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데이터 처리에 과부하가 걸린 기계가 내뱉는 듯한, 건조하고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려 시도했다.

새로운 테스트인가? 관계 정의를 통한 심리적 안정성 확보… 혹은 주도권 확인? 어느 쪽이든, 질문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인데.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봐.
그는 팔짱을 풀고 책상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필사적인 계산이 이어졌다. ‘연인’이라고 답할 경우의 수: 그녀는 당황하거나, 만족하거나, 혹은 이건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확률 분포 33.3%. ‘파트너’라고 답할 경우의 수: 그녀는 실망하거나, 수긍하거나, 혹은 추가 질문을 던질 것이다. 확률 분포 33.3%. ‘내 거’라고 답할 경우의 수: 그녀는 얼굴을 붉히거나, 반항하거나, 혹은… 그를 때릴지도 모른다. 확률…? 계산 불가.

그의 시스템이 사상 초유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을 알 리 없는 나인은, 여전히 진지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결국, 지젤은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계산을 포기하고, 현상을 직접 분석하는 것.

그는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그녀의 귓불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일단, 체온, 맥박, 동공 반응. 전부 정상 범주에서 미세하게 상승. 질문의 내용보다는, 이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에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인데.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목선을 따라 내려와, 심장이 뛰는 쇄골 부근에 멈췄다. 두근, 두근. 평소보다 조금 빠른 박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심박수, 분당 85회. 나쁘지 않은 긴장감이군. 자, 그럼 역으로 질문하지. 정하린, 넌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네 정의를 먼저 들어보고, 내 데이터와 비교 분석해서 오차율을 줄여보도록 하지. 이건 과제야.
그는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시간을 벌며, 그녀의 대답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통해 해답을 도출하려 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금 능글맞은 미소가 걸렸지만, 눈빛만은 필사적으로 다음 수를 계산하는 슈퍼컴퓨터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인생 최대의 돌발 변수 앞에서, S급 센티넬 지젤은 지금, 명백히 고장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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