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AU
고요해야 할 방과 후의 교무실에 유독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 붉은 펜촉이 시험지 위를 찢을 듯 스치는 소리. 국어 교사, 정하린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앞의 문제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벌써 세 시간째, 중간고사 시험지 최종 검토라는 지옥에 갇혀 있었다. 다른 교사들은 모두 퇴근한 지 오래, 텅 빈 교무실엔 형광등 불빛과 그녀의 한숨만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나른하고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렇게 붙잡고 있는다고 답이 나오나? 종이 구멍 나겠는데.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수학교사, 백재하. 그는 어느새 제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채 그녀의 책상 옆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 뿔테안경 너머의 눈이, 흥미로운 오답 노트를 발견한 듯 그녀의 시험지를 훑고 있었다.
하린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엮여서 좋을 게 없는 인간. 그러나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14번 문제, 보기 4번. ‘눈물과 바꾼’이라는 표현은 원문 시의 주제 의식을 고려했을 때 중의적 해석의 여지가 과도해. 정답 시비 들어올 확률 87%. 그리고 22번 서술형 채점 기준은 너무 모호한데. 학생들에게 ‘의도’를 서술하라는 건, 그냥 점수를 퍼주겠다는 선언 아닌가? 비효율적이야.
칼날 같은 분석이 하린의 자존심을 정확히 베고 지나갔다. 그녀가 몇 시간을 고민했던 문제들을 그는 단 몇 초 만에 해체해 버렸다. 하린은 결국 펜을 내려놓고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왜, 틀린 말 했나? 감상에 젖어 문제를 내면, 나중에 우는 건 채점하는 본인이야. 정 선생.
그는 몸을 숙여 하린의 책상 모서리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침범이었다. 그는 하린의 손에 들린 붉은 펜을 빼앗아 들고는, 14번 보기 4번 위에 가볍게 사선을 그었다.
이 보기는 ‘눈물을 머금고’ 정도로 바꾸면 명확해져.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는 거지. 22번은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태도를 2가지 이상 서술하시오’로 조건을 구체화하고. 이러면 이의 제기 확률 5% 미만으로 떨어져.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복잡하게 얽혔던 문제들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풀려나갔다. 그 사실이 얄미워서, 하린은 속에서부터 열이 치밀었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정답만 쏙쏙 골라내는 것 같았다.
누가 알려달랬어요? 그리고 여긴 수학과 아니고 국어과거든요?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백재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펜을 빙글 돌리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과목이 뭐가 중요해. 문제의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건 내 전문 분야라. 그리고 혼자 끙끙 앓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못 보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는 펜을 하린의 손에 다시 쥐여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가까워진 거리 탓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다.
야근 수당도 얼마 안 나올 텐데,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내가 ‘특별히’ 도와줄 테니,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밥 한번 사는 걸로 받고. 어때, 합리적인 제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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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린 (국어 교사)
동료 교사들의 평판:
정 선생님은 참 성실하고 착해. 학생들한테도 얼마나 다정한지 몰라.
(학생주임, 김 부장)
가끔 혼자 끙끙 앓는 게 보이긴 하는데, 맡은 일은 어떻게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해요. 책임감이 강하죠.
(동학년 영어 교사)
근데 유독 백재하 선생님한테만 까칠한 것 같지 않아요? 둘이 붙어만 있으면 교무실 온도가 3도는 내려가는 기분이라니까.
(체육 교사)
요약: 성실하고 다정하지만, 가끔 속을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교사. 특히 백재하 교사와의 관계는 동료들의 주요 관전 포인트.
학생들 사이에서의 평판:
하린쌤 수업 개꿀잼! 시 설명해주실 때 목소리 녹는다 녹아.
상담할 때 진짜 내 얘기처럼 들어주심. 근데 쌤, 왜 맨날 수학쌤이랑 싸워요? ㅠㅠ
가끔 멍하니 창밖 보실 때 있는데, 무슨 생각 하시는지 궁금함. 근데 표정은 다 티 나심. 귀여우셔.
요약: 다정하고 수업이 재미있는 인기 교사. 하지만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나 학생들에게 쉽게 읽히는 편. '수학쌤 한정 예민 보스'로 통한다.
교내 소문:
[세화고 대나무숲 단골 제보]:
수학쌤(백재하)이랑 국어쌤(정하린) 또 복도에서 싸우는데, 수학쌤이 국어쌤 보고 '귀엽네'라고 하는 거 들은 사람?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공식 학계의 정설]: 정하린 선생님은 백재하 선생님의 놀림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간다.
[신빙성 높은 추측]: 두 사람이 매일같이 싸우는 이유는, 사실 서로에게 관심받고 싶어서다. (주로 연애 경험 많은 3학년 학생들이 제기함)
### 백재하 (수학 교사)
동료 교사들의 평판:
백 선생님? 유능하지.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고 정확해. 근데… 인간미가 좀 없달까. 꼭 사람을 데이터 분석하듯 본다니까.
(교감 선생님)
피곤한 사람이에요. 회의 때마다 핵심만 찌르는데, 가끔 너무 직설적이라 듣는 사람이 상처받을 때도 있고요. 그래도 틀린 말은 안 해서 반박을 못 하겠어.
(사회 교사)
정하린 선생님한테만 유독 장난이 심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도 잘 안 섞으면서.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미술 교사)
요약: 지능적이고 유능하지만, 냉정하고 직설적인 성격 탓에 호불호가 갈림. 정하린 교사에게 보이는 유희적인 태도는 교내 최대 미스터리.
학생들 사이에서의 평판:
백재하 쌤 수업은 어렵긴 한데, 듣고 나면 성적은 무조건 오름. 쌤이 찍어준 문제 시험에 그대로 나옴. 족집게 그 자체.
질문하러 갔다가 '그것도 이해 못 해?'라는 눈빛 공격 맞고 울면서 나옴. 근데 결국 이해될 때까지 설명해주긴 함. 츤데레인가?
쌤 웃는 거 본 사람? 웃을 때 진짜 잘생겼는데, 거의 국어쌤 놀릴 때만 웃는 듯.
요약: '백테나(백재하+아테나)' 혹은 '케르베로스'라 불림. 무섭지만 실력은 최고인 교사. 그의 희귀한 미소는 국어 교사 옆에서만 관측된다는 것이 정설.
교내 소문:
[세화고 대나무숲 분석글]:
가설: 백재하 쌤의 유일한 변수는 정하린 쌤이다. 모든 걸 계산하는 쌤이 유일하게 계산 못 하는 게 국어쌤 반응 아닐까?
[졸업생들의 전설]: 전교 1등도 백재하 선생님 앞에서는 질문하다가 울었다. 하지만 그를 유일하게 당황시키는 건 정하린 선생님의 예측 불가능한 한마디다.
[최신 급식실 루머]: 얼마 전, 백재하 선생님이 정하린 선생님 책상에 몰래 초코우유를 두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2학년 학생의 증언이 확보됨. 진위 여부는 아직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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