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 아니면 나쁜 소식 먼저?
백재하는 자신의 연구실,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회색빛 도시가 펼쳐진 14층에 서 있었다. 공기 중에는 오존 냄새와 냉각수 특유의 서늘함이 감돌았다. 그의 손끝에서 떠다니던 수십 개의 홀로그램 창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 아래, 완벽한 질서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오후였다. 단말기가 짧게 진동하기 전까지는.
발신인은 ‘정하린’. 그는 잠시 홀로그램을 조작하던 손을 멈추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 💬 오후 3:01 / 발신: 정하린 ]
>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백재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또 시작이군. 그의 연산 시스템은 즉시 이 질문의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희적 도발. 반응 관찰. 애정 확인. 가능한 모든 변수를 검토한 끝에, 가장 합리적인 경로를 택했다. 긍정적 변수를 먼저 확보하여 후속 대응의 안정성을 높인다. 그는 느릿하게 답장을 타이핑했다.
[ 💬 오후 3:02 / 발신: 백재하 ]
> 좋은 소식부터.
답장을 보내자마자 1초의 지연도 없이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 💬 오후 3:02 / 발신: 정하린 ]
> 차 에어백, 작동 잘 되더라.
...정적.
백재하의 주변을 돌던 모든 홀로그램 창이 일제히 멈췄다. 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가, 바늘 끝처럼 가늘어졌다. 뇌내 시뮬레이션 시스템, GISELLE SEQUENCE가 폭주에 가까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입력값: 차 에어백 작동]`
`[추론 1: 에어백 작동 = 차량 외부 충격 발생]`
`[추론 2: 외부 충격 = 교통사고]`
`[추론 3: 교통사고 = 탑승자(정하린) 상해 가능성]`
`[위기 등급: 최상위(CRITICAL)]`
`[목표 재설정: 정하린의 신변 확보 및 안전 확인]`
단 0.7초 만에 모든 사고 과정이 끝났다.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연구실의 모든 시스템이 그의 단말기와 연동되어 하린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능글맞던 미소도, 장난기 어린 눈빛도 없이,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만이 남았다.
[ 💬 오후 3:03 / 발신: 백재하 ]
> 위치.
그가 보낸 것은 단 한 단어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입고 있던 실험복을 벗어 던지고, 벽에 걸려있던 검은색 전술 코트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관절을 툭툭 튕기는, 피로 누적이 아닌 극도의 집중 상태에서 나오는 버릇이 나타났다. 단말기가 다시 울렸다.
[ 💬 오후 3:03 / 발신: 정하린 ]
> 엥? 왜? 나 B-3구역 쇼핑몰인데.
> 아, 나쁜 소식은 오늘 사려던 한정판 신발 품절이래.
백재하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이미 연구실 문을 나서고 있었다. B-3구역 쇼핑몰. 최단 경로 계산이 그의 시야에 붉은 선으로 그려졌다. 예상 도착 시간 4분 17초.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대신, 비상 계단으로 향하며 지부장 K에게 다이렉트 콜을 연결했다.
지부장님. S급 센티넬 지젤. 코드 레드 발령 요청. A급 가이드 나인, 위치 B-3구역 쇼핑몰. 사고 발생 추정. 반경 1km 통제 및 의료팀 대기 명령.
수화기 너머에서 당황한 K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백재하는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통화를 끊고, 비상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사고 현장의 모든 가능성이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충돌 각도, 속도, 상대 차량의 종류, 하린이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부상의 모든 경우의 수. 경미한 타박상부터 최악의 상황까지, 수백 개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타이어가 찢어질 듯한 마찰음을 내며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센터를 벗어나는 순간, 그의 단말기로 하린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 💬 오후 3:07 / 발신: 정하린 ]
> ??? 재하야? 무슨 일이야? 센터에서 사이렌 울리는데?
> 나 그냥 주차하다가 기둥에 살짝 박은 거거든...? 그래서 에어백 터진 거고...
> 진짜 살짝이야! 차 범퍼만 좀 긁혔어! 나 완전 멀쩡해!
백재하는 그 메시지를 보고서야 핸들을 쥔 손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 파랗게 질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차를 도로 한쪽에 급하게 세웠다. 끼이익-!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차가 멈췄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과열된 시스템이 서서히 냉각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스템 재부팅. 위기 등급 조정: 최하위(NORMAL)]`
`[목표 재설정: 정하린 회수 및 상황 재평가]`
그는 이마를 짚으며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몇 초 후, 그는 고개를 들고 다시 하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전의 단답형과는 전혀 다른, 제법 긴 문장이었다.
[ 💬 오후 3:09 / 발신: 백재하 ]
> 정하린.
> 지금부터 정확히 3분 뒤에 네 앞에 도착할 거야.
> 그리고 도착하면, 오늘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주 상세하게, 몸으로 깨닫게 해줄 생각이야.
> ‘살짝’ 박았는데 에어백이 터지는 차는 없어.
> 도망칠 생각 마. B-3구역은 이미 내가 통제했으니까.
후일담
그날 저녁, A-7구역의 펜트하우스. 백재하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하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있었지만, 눈빛은 아까의 살기 대신 깊은 피로와 약간의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설명해 봐. 어떻게 주차 기둥에 ‘살짝’ 박았는데, 차 앞부분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에어백이 터질 수가 있지? 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 충격량은...
아니, 그러니까... 엑셀을 브레이크인 줄 알고...
하린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앞에는 `[차량 운전 및 주차 안전 수칙 100가지]`라는 제목의 홀로그램 리포트가 띄워져 있었다. 백재하가 10분 만에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네 덕분에 지부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 지부장님은 내가 폭주라도 한 줄 알고 SS급 센티넬 비상 호출까지 고려했더군.
백재하는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는 하린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앞으로 혼자 운전 금지. 그리고 그 한정판 신발. 내가 내일 전 세계 재고를 전부 뒤져서라도 구해다 줄 테니,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내 심장을 테스트하지 마. 내 모든 시퀀스는 네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어 있어. 이런 식의 변수는... 감당하기 힘들어.
그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말에 하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미안함과 함께 장난기가 어렸다.
그럼... 나 때문에 그렇게 놀랐다는 게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
그 순간, 백재하의 모든 표정이 무너졌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하린의 이마에 딱, 소리가 나게 꿀밤을 먹였다.
정하린. 넌 진짜...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꽉 껴안았다. 그의 심장이 여전히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앞으로 정하린에게 차 키를 맡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시스템에 새로운 프로토콜을 영구적으로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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