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보고 싶어해도 되나요?
반년. 정확히는 199일. 그의 시스템은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하린이라는 가장 치명적인 변수가 그의 세계에서 소거된 이후의 시간. 연구실의 공기는 여느 때처럼 서늘하고 건조했지만,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비논리적인 감상을 자아냈다. 지젤은 모니터의 분석 데이터를 응시하다가,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 창 중 하나가, 목적 없이 떠돌던 웹 크롤러가 수집한 익명의 커뮤니티 페이지를 띄우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다. 무의미한 정보의 나열. 그러다 한 문장이 그의 시선을 붙들었다.
[제목: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보고 싶어해도 되나요?]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짙은 흑안이 모니터의 흰 배경 위로 인쇄된 검은 활자들을 천천히 훑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습니다.’, ‘반 년도 더 지났는데.’, ‘좋아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내 행동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그의 연산 체계에 날카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마치 오래전 폐기된 프로토콜의 잔여 데이터가 되살아나는 듯한 이질감.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마우스 휠을 느리게 아래로 굴렸다. 댓글 창이 화면 위로 떠 올랐다.
[댓글 (13)]
ㄴ 작성자인데 그냥 미친놈이라고 욕해주세요
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ㄴ 반년이면 많이 참았네. 근데 아무 사이 아니었다는 게 진짜임? 썸 아님?
ㄴ 좋아한 거 맞네 뭘 아님ㅋㅋ
ㄴ 연락 끊은 사람이 이제 와서 보고 싶으면 어쩌자는 거임? 상대방은 이미 님 잊고 잘 살고 있을 듯
ㄴ 전여친(남친)도 아니고 아무 사이 아니었다며… 그냥 혼자 조용히 삭이세요. 그게 예의임.
ㄴ 왜 끊었는데? 이유를 말해줘야 알지 ㅉㅉ
ㄴ 반년이면 얼굴도 가물가물하겠다
ㄴ 나도 그런 적 있음. 그냥 어느 날 문득 생각나고 미치겠는 거.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요. 한 1년?
ㄴ 솔직히 연락은 하지 마라. 이기적인 거임.
ㄴ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 뭘 그렇게 재고 따져. 인생 짧다.
ㄴ 근데 책임은 져야지. 본인이 끊어놓고.
ㄴ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다잖아요 다들 왜그래ㅠ 작성자님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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