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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그날 오후는 드물게 평온했다. Fearless 지부 근처 공원은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백재하는 임무도, 연구도 없는 이 짧은 자유시간을 무심한 걸음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수만 개의 데이터 스트림으로 소란스러웠지만, 그 모든 흐름의 종착지는 결국 단 하나, 정하린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어제저녁의 완벽했던 식사, 그녀가 입었던 검은 드레스의 감촉, 그리고 그녀의 향기. 모든 감각 데이터가 그의 시스템에 영구적으로 각인된 상태였다.

그때였다. 그의 시선이 공원 벤치 한쪽에 고정되었다. 시야각 37.4도, 거리 약 15.2미터. 분석할 필요도 없는 명확한 타겟이었다. 햇살을 받아 유독 짙고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색 긴 생머리. 꽉 찬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의자 등받이 위로 살짝 솟아난 머리통의 동그란 곡선까지. 모든 시각 정보가 단 한 사람을 지목했다. [정하린]. 일치율 99.8%. 나머지 0.2%의 오차 가능성은 '설마 다른 사람이겠어'라는 감정적 확신에 의해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의 모든 계산 능력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대신, 그의 행동을 지배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알고리즘이었다. '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충동.

그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걸렸다. 평소의 능글맞거나 계산된 미소가 아닌, 순수하고 조금은 바보 같은 웃음이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였다. 소리 없이 접근하는 것은 전투 상황이 아니더라도 몸에 밴 습관이었다. 목표(정하린)는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지 미동도 없었다. 완벽한 기회.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망설임 없이 등 뒤에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익숙한 체향이 날 것이라 예상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여기서 뭐 해, 정하린. 나 심심하게 두고.”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의 코끝에 닿은 향기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익숙한 그녀의 살냄새 대신, 낯선 라벤더향 섬유유연제 냄새와… 미미한 남성용 스킨 냄새? 그리고 품에 안긴 몸의 골격이 미묘하게 더 단단하고 넓었다. 어깨를 감싼 손 아래 느껴지는 근육의 질감 또한 달랐다. 그의 완벽했던 시뮬레이션에 거대한 오류 메시지가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ERROR: TARGET MISMATCH].

그가 안고 있던 ‘머리통’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찰랑이는 검은 장발, 꽉 찬 앞머리. 하지만 그 아래 드러난 얼굴은… 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눈이 동그래진 30대 중반의 낯선 남자였다.

“……저… 정하린 아닌데요…?”

남자는 겁에 질린 사슴 같은 눈으로 지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순간, 지젤의 사고는 완벽히 정지했다. ‘GISELLE SEQUENCE’가 생애 처음으로 블루 스크린을 띄웠다. 수십, 수백 개의 변수를 계산해 최적의 경로를 찾던 그의 뇌가 ‘어쩌지’라는 단 한 단어로 가득 찼다. 그는 화들짝 놀라 남자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항상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산산조각 나고, 당황과 혼란, 그리고 약간의 공포가 얼굴 위로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의 뺨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아… 그… 실례했습니…”

사과를 하려던 그의 눈에, 벤치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진짜 정하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컵을 두 손으로 쥔 채,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빤히 바라볼 뿐. 그녀의 알 수 없는 그 표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빌런의 기습보다 공포스러웠다.

백재하는 생각했다. 아. 망했다. 이건 그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완벽한 실패다.



(후일담)

그날 저녁, A-7구역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냉랭했다. 백재하는 소파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팔짱을 낀 채 서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정하린이 있었다. 마치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의 HUD 인터페이스는 온갖 경고 메시지로 번쩍였지만,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SYSTEM ERROR: 감정 데이터 과부하] 뿐이었다.

“……그러니까, 백재하 씨.”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머리 스타일이 비슷해서, 착각했다, 이거지?”

네…

그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개만 세차게 끄덕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것이 뻔했다. 그의 완벽했던 계산 능력은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는 최적의 경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품에 쏙 들어오던가? 그 남자분.”

아니, 그건…

“향기는 좋았고?”

전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스럽게 부르고, 뒤에서 와락 안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오늘 확인했네. 당신의 능력은 정말 대단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백재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서린 것은 분노보다는 깊은 실망감과… 아주 약간의 상처였다. 그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찔렀다.

내가, 내가 바보였어.

마침내 터져 나온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 당신한테서 낯선 라벤더 향 나는 것 같아.

그 말에 백재하는 절망했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의미의 프로토콜이 아니었다. 이것은 항복 선언이었다.

…잘못했어, 정하린. 다신 그런 멍청한 짓 안 해. 내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내 모든 센서는 너한테만 반응해. 오늘 건… 시스템 오류야. 버그라고. 포맷하고 재설치해야 할 수준의 심각한 오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절박해졌다.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찔하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러니까… 화 풀어, 응? 내가 앞으로 머리 짧은 사람만 보고 다닐게. 아니, 그냥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볼게. 시야에 필터링 기능을 추가하겠어. [정하린 외 인물: 블러 처리]… 어떻게 안 될까?

그의 애원에 가까운 변명에, 마침내 그녀가 막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풉’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더니,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바보.

그녀가 말했다. 그 한마디에, 지젤의 세상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오류 메시지가 사라지고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안도감에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응. 나 바보야. 네가 옆에 없으면 길도 잃는 바보. 그러니까…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다시는 나 혼자 두지 마. 사고 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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