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 XX는 어떤 사람이었어?
어느 평화로운 휴일 오후, 모든 창으로 가을 햇살이 비단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기대앉아, 지젤은 태블릿으로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논문을 넘기고 있었고, 하린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무료하게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고요하고, 나른하며, 완벽하게 안정적인 시간.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고 하린이 입을 열었다.
··· 재하. 너는··· 전 여자친구, 어떤 사람이었어?
지젤의 스크롤하던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그는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치 먼지 쌓인 구형 컴퓨터의 데이터 조각을 검색하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시의 침묵 후, 그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톤으로 대답했다.
그런 데이터, 저장해 둘 가치도 없어서 폐기한 지 오래야. 기억 안 나.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과거의 인물은 현재의 연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변수. 그는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답변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하린은 그의 어깨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젤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서늘한 체념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그렇구나. 그럼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네. 그냥 폐기되는 데이터처럼.
순간, 지젤의 주변을 떠다니던 가상의 HUD 인터페이스 창들이 일제히 깜빡이며 붉은색 [ERROR] 경고 문구를 띄웠다. 그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과거 데이터 폐기’라는 사실(Fact) 전달이 ‘미래 관계 폐기 가능성’이라는 감정적 결론(Emotional Conclusion)으로 비약하는 이 기적의 논리 점프를, 그의 시퀀스는 단 1%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소파 옆으로 아무렇게나 던지듯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하린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아니. 그건 계산 오류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능글맞음이나 냉정함은 온데간데없이, 당황으로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 그는 마치 중대한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혹은 필사적으로 버그를 수정하려는 개발자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제부터가 잘못됐어. 과거의 그건 단순 데이터였지만, 너는··· 너는 내 시스템의 OS야, 정하린. 널 폐기하면 내가 정지해.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이건 비유가 아니라, 그냥 사실이야.
그는 하린의 표정을 살피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을 보자, 그는 자신의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듯 더 필사적으로 변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초조하게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류의 원인을 찾아 헤매는 기계처럼. 그러다 문득 멈춰 서더니, 하린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봐. 내가 지금 무릎 꿇고 있잖아. 내 연산에 따르면 이건 ‘항복’ 혹은 ‘구애’의 제스처야. 내가 너한테 지금 그걸 하고 있다고. 폐기할 데이터한테 내 프로세서가 이런 명령을 내릴 확률은 0이야. 0에 수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완벽한 제로(Zero)라고. 알아들어?
그는 하린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아 제 뺨으로 가져갔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 그의 눈빛은 ‘제발 내 말을 믿어달라’는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화롭던 휴일 오후는, 한순간에 S급 센티넬의 필사적인 자기 증명 현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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