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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여자 구두 신을 수 있어?

[케덕]

유월의 햇살은 투명한 유리 조각처럼 쏟아져 내렸다. 지젤과 나인은 도심 속 인공 호수를 낀, 한적한 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걷는 나인의 걸음이 미세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은, 산책을 시작한 지 정확히 17분 45초가 지났을 때였다. 처음에는 보폭의 미세한 불균형. 그다음은 왼쪽으로 아주 약간 쏠리는 무게중심. 그의 시스템은 즉시 ‘이상 신호’를 감지했지만, 그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고 데이터가 축적되기를 기다렸다. 마치 고장 난 기계의 소음을 분석하듯, 그는 나인의 불규칙한 발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결국, 나인의 걸음이 눈에 띄게 절뚝이는 순간이 왔다. 아픔을 참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모습까지 그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제야 지젤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의 갑작스러운 정지에, 나인도 따라 멈춰 서서 의아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였다. 그의 시선은 곧장 나인의 발목, 그리고 그녀가 신은 검은색 메리제인 구두에 고정되었다. 새것인 듯 매끈한 가죽의 광택과 달리, 그녀의 하얀 발목 양말 위로, 발뒤꿈치 아킬레스건 부근에 붉은 상처가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피였다.

변수 발생. 원인, 신발. 오차 범위, 허용 불가.
그의 뇌리에 간결한 분석이 끝났다. 그는 나인을 지나쳐 가장 가까운 벤치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벤치를 손으로 한 번 툭툭 털어내고, 돌아와 그녀를 향해 턱짓했다.

앉아.
명령에 가까운 간결한 말이었다. 나인이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자, 그는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변을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세상에는 오직 눈앞의 상처와, 그 상처의 주인인 정하린만이 존재했다.

지젤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구두 버클을 풀고, 신발을 벗겨냈다. 예상대로였다. 새 구두의 빳빳한 뒷부분이 그녀의 여린 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배어 나온 상태였다. 그는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렸다. 완벽하게 계산된 데이트 동선에 발생한 예측 밖의 사태. 짜증이 치밀기보다는, 자신의 계산에 이런 기본적인 변수를 포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불쾌감과, 고통을 참아온 그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멍청하게. 아프면 바로 말했어야지.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상처를 살피는 그의 손길은 깃털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항상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소독용 알콜 스왑과 의료용 밴드를 꺼냈다. 작은 상처를 소독할 때의 따끔함을 예상한 듯, 그는 상처를 닦아내기 전 나인의 얼굴을 흘긋 살폈다. 그리고는 아주 능숙하고 빠른 동작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치료는 끝났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신발을 다시 신는 순간, 고통은 반복될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근처 상점에서 편한 신발을 구매해 오는 것. 시뮬레이션은 이미 가장 빠른 경로와 최적의 상품 리스트를 그의 눈앞에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지를 폐기했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재미없는 해결책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죽 로퍼를 벗었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눈치챈 나인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신발을 그녀의 발 앞에 놓았다.

신어.
그리곤 방금 그녀에게서 벗겨낸, 피가 살짝 묻은 작은 메리제인 구두를 제 손에 들었다. 사이즈는 터무니없었다. 그의 발은 이 작고 예쁜 구두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두의 뒤축을 꺾어 슬리퍼처럼 구겨 신었다. 발의 반도 채 들어가지 않은,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도 없었다.

자, 이제 다시 가볼까. 오늘의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까. 이 정도 페널티는 당연한 거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벤치에 앉은 나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놀란 시선들이 그의 등 뒤에 비수처럼 꽂혔지만, 그는 오히려 그 시선들을 즐기는 듯 입꼬리를 미세하게 비틀어 올렸다. 이건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것은 선언이었다. 너의 고통은 나의 것이고, 너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변수는 내가 감당하며, 이 세상 누구도 너를 불편하게 만들 수 없다는, 백재하 방식의 완벽한 증명이었다.


[로판]
오랜만의 휴일이었다. 빌런의 출현도, 지부의 호출도 없는, 완벽하게 둘만을 위한 시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도심 속 공원은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나른한 활기로 가득했다. 백재하는 자신의 옆에서 걷는 그녀의 걸음이 미세하게 흐트러지는 것을 포착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처음에는 그저 보도블록이 고르지 못한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반복적인 패턴임을 그의 시스템이 분석해 냈다.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쏠리는 체중, 땅을 디딜 때마다 순간적으로 굳는 어깨선. 그는 말없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그의 목소리는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원인을 파악한 자의 확인에 가까웠다. 그는 시선을 내려, 그녀가 오늘 아침 고심해서 고른 새하얀 메리제인 구두를 바라보았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에나멜 가죽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지만, 그의 눈에는 단지 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형구(刑具)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가장 가까운 벤치 쪽으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그녀를 벤치에 앉힌 그는,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기사가 군주 앞에 맹세하듯, 경건하기까지 한 자세였다. 주변을 지나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는 오직 눈앞의 그녀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저 하얀 구두뿐이었다.

벗어 봐.
그는 명령하듯 말하며, 그녀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스트랩의 버클을 풀어냈다. 그의 섬세하고 긴 손가락이 구두를 벗겨내자, 붉게 쓸려 피가 맺힌 그녀의 발뒤꿈치가 드러났다. 그 상처를 보는 순간, 백재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깟 가죽 따위가, 감히 자신의 것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에 불쾌감이 치밀었다.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상처를 응시했다. 마치 그 고통의 깊이를 제 눈으로 측정하려는 듯. 그는 자신의 까만 가죽 로퍼를 벗었다.

신어.
그는 자신의 신발을 그녀의 발 앞에 놓아주었다. 그녀의 발에는 턱없이 클 것이 분명한, 남자 사이즈의 검은 로퍼였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벗어둔 하얀 메리제인 구두에 자신의 발을 밀어 넣었다. 184cm의 건장한 남성에게 여성용 구두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발가락을 구겨 넣고, 뒤꿈치를 억지로 욱여넣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발등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뒤꿈치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벤치에 앉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러면 공평하지.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마치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이라는 듯. 꽉 끼는 구두 때문에 그의 걸음걸이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위태로웠지만,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동요도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걸을까. 아직 보고 싶은 게 남았는데.
그의 제안은 거절을 염두에 두지 않은 통보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로퍼를 신고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손을 내민 채 기다렸다. 헐렁한 그의 신발을 신은 그녀와, 작고 하얀 그녀의 구두를 신은 그. 공원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기묘한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백재하는 오직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 비논리적이고 기이한 행위는, 오직 그녀를 향한 그의 소유권을 세상에 공표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너의 고통은 나의 것이며, 너의 불편함은 내가 대신 감당한다. 그러니 너는 나의 보호 아래 온전히 평온하기만 하라. 그는 아무 말 없이, 어색하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그녀를 이끌며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구두가 그의 발을 짓누를 때마다 전해지는 고통은, 오히려 그에게 기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 [사내 익명 게시판 'FEARLESS-Lounge'] [오후 3:16] 실시간 인기글: [목격담] 공원에서 웬 남자가 여자 구두 억지로 신고 다니는데… 이거 신종 플레이냐? / 댓글: (IP: 211.xxx) S급 센티넬 지젤이랑 닮았던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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