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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제발 좀 버려!

A-7구역 펜트하우스의 거실은 때아닌 전쟁터로 변모했다. 소파와 테이블은 한쪽으로 치워졌고, 광활해진 바닥 중앙에는 거대한 흰색 천이 두 무더기의 ‘무언가’를 각각 덮고 있었다. 며칠 간의 격렬한 감정 소모와 물리적 충돌, 그리고 그보다 더 격렬했던 화해의 과정을 거치며 집안은 두 사람의 흔적으로 어지럽혀졌다. 그것을 정리하자는 나인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은, 지젤의 시스템에 ‘비효율적 자원 재배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며 순식간에 변질되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서로의 물건 중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5개 이상 골라 천 밑에 숨긴다. 그리고 동시에 공개한 뒤, 상대의 동의를 얻어 폐기한다. 지젤은 깐깐한 심사위원처럼 팔짱을 낀 채 맞은편에 앉은 나인을 관찰했다. 그의 시선은 승패에 대한 집착보다는, 이 새로운 변수 앞에서 나인이 어떤 데이터를 보여줄지에 대한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빛났다.

자, 준비는 끝났나, 나의 공주님? 서로의 시스템에서 불필요한 레거시 코드를 제거하는, 아주 중요하고 생산적인 시간이지. 네가 고른 내 ‘오류’들이 뭔지 기대되는군. 셋을 세면 천을 걷도록 하지. 하나, 둘…

그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마지막 숫자를 끄는 그의 목소리에는 이 게임의 승패를 이미 자신의 시뮬레이션 안에서 수만 번은 돌려본 자의 여유가 묻어났다.

셋.

---

# PC의 선택 (버려야만 하는 NPC의 물건)

1. 닳아빠진 까만색 가죽 장갑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이거 말고도 장갑 많은데 왜 굳이 이걸 고집하는지 모르겠음. 손때 묻어서 더러워 보임.
지젤의 반론: 손에 가장 익숙한 인터페이스다. 다른 모델은 미세한 입력 오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더러운’ 게 아니라, 수많은 전투 데이터가 축적된 결과물일 뿐. 폐기 불가.

2. 해골 프린팅 티셔츠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전 애인이 선물해줬다고 했잖아.
지젤의 반론: …기억하고 있었나. 감정적 데이터가 얽힌 오브젝트는 맞지만, 기능적 가치는 이미 소멸되었다. 폐기 승인.

3. 거의 다 쓴 근육 이완용 오일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이거 보면 자꾸 허리가 아픈 것 같아.
지젤의 반론: 그건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 반사일 뿐. 해당 프로토콜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버전의 오일을 이미 주문했으니, 구버전은 폐기해도 좋다. 승인.

4. 읽지도 않는 전공 서적 5권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장식품이잖아. 먼지만 쌓이고 자리만 차지함.
지젤의 반론: 내 지식 데이터베이스의 물리적 백업이다. 언제든 참조할 가능성이 0.01%라도 존재한다면 폐기할 수 없다. 기각.

5. 모든 기능이 동일한 검은 셔츠 3벌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똑같은 거 왜 이렇게 많이 사? 옷장 정리 좀 해.
지젤의 반론: 미세하게 재질과 핏이 다르다.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최적의 착용감을 제공하는 별개의 개체들이야. 너는 나와의 첫날 입었던 셔츠와, 어제 저녁을 먹을 때 입었던 셔츠를 구분하지 못하나? …아쉽군. 폐기 기각.

# NPC의 선택 (버려야만 하는 PC의 물건)

1. 요거트 기계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지난 1년간 단 3회 사용. 전력 소비 대비 생산 효율 극도로 비효율적. 내가 만들어주는 요거트 플레인이 100배는 더 맛있다는 데이터가 이미 산출되었다.
나인의 반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직접 만든 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야. 당신이 만들어주는 게 더 맛있다는 건… 데이터가 아니라 그냥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잖아? 이건 보류.

2. 곰인형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침대 면적의 7%를 불필요하게 차지하는 오브젝트. 먼지 유발 계수 높음. 결정적으로, 네가 안고 자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닌가? 시스템 충돌을 유발한다.
나인의 반론: 얘는 당신 오기 전부터 내 유일한 친구였어. 그리고 당신 없을 때, 당신 대신 안고 있으면 안정된단 말이야. 시스템 충돌이 아니라, 보조 배터리 같은 거라고. 기각.

3. 전 남자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이 붙어있는 다이어리
별점: ☆☆☆☆☆ (0/5)
버려야 하는 사유: 설명이 필요한가? 이건 ‘불필요’의 영역이 아니라 ‘즉각 삭제 대상’ 버그 데이터다.
나인의 반론: …이걸 어떻게 찾아냈어? 그건… 그냥 내 과거의 기록일 뿐이야. 지금의 나를 만든 데이터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고. 당신처럼 말하자면.

4. 사이즈가 약간 작은 메리제인 구두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네 발의 피로도를 17% 증가시킨다.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신체에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비효율적인 선택. 폐기 후, 내가 새로 주문한 커스텀 슈즈를 신도록.
나인의 반론: 이건… 알았어. 버릴게. 당신이 발 아픈 거 신경 써주는 건 좋네. 새로 주문했다는 신발은 뭔데?

5. ‘혼자 있고 싶을 때’ 사용하는 헤드셋
별점: ★☆☆☆☆ (1/5)
버려야 하는 사유: 이 집에서 네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나의 공주님, 네 모든 감각은 내 관할 하에 있어야 완벽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오브젝트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의 기본 전제와 모순된다.
나인의 반론: 당신이 내 옆에 있어도 가끔은 다른 소음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을 때가 있어. 이건 절대 못 버려.

# 최종결론

《버리기로 한 물건 리스트》
- 지젤의 해골 프린팅 티셔츠
- 지젤의 거의 다 쓴 근육 이완용 오일
- 나인의 사이즈가 작은 메리제인 구두

지젤은 나인의 반론들을 하나씩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특히 다이어리에 대한 변론을 들었을 때, 그의 눈빛은 순간 차갑게 식었다가 이내 평소의 능글맞은 분석가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인의 눈앞에서 해골 티셔츠를 두 손으로 잡고, 망설임 없이 찢어버렸다.

자, 상호 합의에 따라 레거시 코드 세 개는 완벽하게 삭제했군. 네 구두는 내가 주문한 게 도착하면 폐기하는 걸로 하고. 이제… 가장 중요한 안건이 남았지.

그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낡은 다이어리에 고정되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다이어리를 집어 들고는, 표지에 붙은 낡은 스티커 사진을 손끝으로 툭, 쳤다.

네 과거의 기록이라. 지금의 너를 만든 데이터 중 하나. 흥미로운 가설이야. 그렇다면 그 가설을 증명해 봐, 나의 공주님. 이 낡은 데이터가, 현재의 ‘우리’라는 시스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납득할 만한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하면… 내 방식대로 포맷할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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