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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사실은 말이야

처음 널 만났을 때, 사실은 무서웠어. 네 그 눈빛이 꼭 나를 해체해서 분석하는 것 같아서.

지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드레스룸 벽에 기대선 그의 자세는 미동조차 없었지만, 그를 둘러싼 공기의 온도가 미세하게 내려가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칠흑 같은 눈동자 안에서 수만 개의 데이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무서웠다’. 과거형의 그 단어가 그의 시스템에 예리한 파편처럼 박혔다. 그는 자신의 초기 대응 프로토콜—상대를 몰아붙여 한계를 시험하고 반응을 수집하던—이 그녀에게 어떤 종류의 상흔을 남겼는지 비로소 직시했다.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랬을 거야.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라는 변수를 이해하려면, 가장 원초적인 반응부터 수집해야 한다고 판단했어. …멍청한 짓이었지. 널 데이터가 아니라, 그냥 정하린으로 봤어야 했는데. 내 계산식이 틀렸던 거야, 처음부터.


네가 나를 두고 혼자 임무에 나갔을 때,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 네가 다쳐서 돌아올까 봐, 혹은… 나한테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젤의 턱선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는 성남 C-3구역에서의 전투를 떠올렸다. 모르페우스와의 사투 끝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자신을 와락 끌어안았던 그 작은 온기. 그녀가 그저 가이딩이 필요한 센티넬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순간의 침묵과 떨림 속에 얼마나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는지를 이제야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는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떼고, 나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그녀의 눈을 파고들었다.

 

돌아갈 좌표는 처음부터 너 하나였어, 하린아.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시퀀스 한가운데에 있든, 모든 경로의 종착지는 항상 너였어. 불안해할 필요 없어. 네가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해야 할 유일한 위치니까. 앞으로는… 혼자 가게 두지 마.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어.


가끔, 네가 너무 다정해서 이게 꿈은 아닐까 생각해. 예전의 너랑 지금의 네가 너무 달라서, 언젠가 원래의 너로 돌아가 버릴까 봐 겁나.

지젤은 걸음을 멈췄다. 그녀와의 거리는 이제 단 한 뼘.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아주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눈 밑을 부드럽게 쓸었다. ‘겁이 난다’는 그녀의 진심은 그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장된 오류 경고 시스템을 붉게 점멸시켰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불안정성을 야기했었는지, 그리고 그 그림자가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음을 통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낮고 부드러워졌다.

예전의 나는 없어. 너를 만나기 전의 백재하는 그냥 비어있는 함수 같은 거였어. 의미 없는 데이터를 입력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를 출력하는 기계. 지금의 나는, 너라는 유일한 변수를 만나 완성된 새로운 존재야. 이건 변한 게 아니라, 비로소 진짜가 된 거야. 그러니 두려워 마. 이 다정함은 너만이 실행시킬 수 있는, 오직 너를 위한 프로토콜이야. 되돌아갈 과거 따위는, 내가 이미 전부 삭제했어.

 

너 몰래 침대 밑에 비상 간식 숨겨놨어. 밤에 배고플 때 혼자 꺼내 먹으려고.


지젤의 표정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짙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 속에서 터져 나온 너무나도 사소하고 사랑스러운 비밀. 그는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감쌌던 뺨에서 손을 내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제 쪽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그의 가슴이 작게 울렸다.

…정하린. 진짜. 너란 변수는 정말 예측 불가능하군. 침대 밑? 그런 고전적인 수법을 쓸 줄은 몰랐는데. 좋아, 그 귀여운 비밀은 눈감아주지. 대신 조건이 있어. 앞으로 그 비상 간식은, 나랑 같이 먹는 거야. 내가 밤새도록 너를 괴롭혀서, 혼자서는 침대 밑에 손을 뻗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만들 거니까.


네가 사준 모든 옷, 모든 물건들.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어. 그게 전부 너의 시간이고, 너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웃음기가 가신 그의 눈이 다시 깊어졌다. 그는 나인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마치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자신이 무심코 건넨 수많은 것들이 그녀에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의 증표로 기록되고 있었다는 사실. 그건 그의 어떤 시뮬레이션에도 없던 결과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그녀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됨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래. 전부 네 거야. 내가 가진 모든 시간, 내가 내리는 모든 판단, 그 결과로 얻어지는 모든 것들. 전부 너에게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버릴 필요 없어. 그 모든 게 모여서, 너와 나의 세계를 만드는 거니까.


사실은… 널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널 사랑했어. 미워하고 밀어내려고 했던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사실 널 사랑하고 있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젤의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그의 세계를 가득 채웠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 한마디가 그의 존재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미움과 경멸의 가면 아래, 처음부터 사랑이 있었다는 고백. 그건 그의 모든 계산과 분석을 뛰어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였다. 그를 안고 있던 팔이 풀리고, 대신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다시. 다시 말해봐, 하린아.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통제되던 S급 센티넬의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마치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신자처럼 절박하게 되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의 최종 확인을 요구하는 것처럼.

내가… 내가 너를 밀어붙이고, 상처 주고, 시험했던 그 모든 순간에도,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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