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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너 뭐 샀어?

평온한 오후였다. Fearless 지부의 소음도, 도시를 할퀴는 빌런의 비명도 닿지 않는 A-7구역 펜트하우스의 거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먼지를 금가루처럼 반짝이게 했고, 공기청정기는 낮은 소음으로 백색의 평화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젤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무릎을 베고 잠든 나인의 머리칼을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쓸어넘기는 중이었다. 그의 모든 연산 능력은 오직 그녀의 균일한 숨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최적의 손가락 압력을 계산하는 데에만 쓰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통제하에 있는, 절대적인 평온의 좌표.

그때였다. 그의 흰 가운 주머니 안쪽에 넣어둔 단말기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진동했다. 지젤의 미간이 찰나의 순간 좁아졌다. 임무 호출인가? 아니, 그 진동 패턴은 지부에서 오는 긴급 신호와는 달랐다.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알림. 그는 나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소파 팔걸이에 상체를 기대어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며칠 전 나인에게 건넸던 검은색 카드의 결제 알림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좌표와 자산을 공유하며, 망설임 없이 '네가 원하는 모든 세계를 구매하라'는 권한을 위임했던, 그 카드의 첫 번째 사용 기록. 지젤의 입꼬리가 흥미롭다는 듯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녀가 구매한 첫 번째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알림은, 그러나,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html

[BLACK CARD] 승인 알림

승인금액: ₩ 89,700,000

승인시각: 14:02

가맹점: 르 비쥬 브리에 (온라인)

*누적: ₩ 89,700,000

[BLACK CARD] 승인 알림

승인금액: ₩ 250,000,000

승인시각: 14:03

가맹점: 헤스티아 퍼니처 (쇼룸)

*누적: ₩ 339,700,000

[BLACK CARD] 승인 알림

승인금액: ₩ 1,000

승인시각: 14:05

가맹점: 길고양이맘마후원

*누적: ₩ 339,701,000

[BLACK CARD] 승인 알림

승인금액: ₩ 12,900

승인시각: 14:06

가맹점: 멍충냥이(젤리맛치약)

*누적: ₩ 339,713,900

[BLACK CARD] 승인 알림

승인금액: ₩ 1,240,000

승인시각: 14:08

가맹점: 오드너리랩(실험용가운)

*누적: ₩ 340,953,900

```

지젤은 연달아 울리는 알림들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주식 시장의 등락 그래프를 보는 분석가처럼, 혹은 무의미한 데이터의 나열을 읽는 기계처럼. 하지만 그의 뇌리에서는 폭풍 같은 시뮬레이션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8천 9백 70만 원짜리 보석, 그리고 2억 5천만 원짜리 가구. 그녀가 자신의 부의 한계를 시험하는 걸까? 아니. 정하린은 그런 유치한 테스트를 할 여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녀가 구축하려는 '세계'의 첫 번째 초석일 터. 그녀의 취향으로 꾸며질 이 공간과, 그녀의 몸을 장식할 반짝이는 것들. 모든 것이 ‘정하린의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였다. 지젤은 그 총합이 자신의 자산에 미치는 영향이 0.001% 미만이라는 사실보다, 그녀의 선택 하나하나가 그려낼 미래의 풍경이 더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앞선 두 개의 거대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의 연산 체계를 뒤흔든 것은, 그 뒤를 잇는 지극히 사소하고 변칙적인 숫자들의 배열이었다. 길고양이를 위한 1,000원의 후원. 그리고 고양이용 치약. 마지막으로, 자신의 것이 분명한 실험용 가운. 그것도 아주 비싼 맞춤 제작 브랜드의 것이었다.

지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의 시스템은 이 불규칙한 데이터의 나열을 이해하기 위해 과부하 직전까지 치달았다. 수억 원의 사치와 천 원의 자비, 그리고 만 이천 구백 원의 엉뚱함,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한 백이십사만 원의 세심함. 이 얼마나… 정하린 다운 소비 패턴인가. 그녀는 거대한 부를 휘두르면서도 가장 작은 생명을 잊지 않고, 엉뚱한 변수를 던져 넣는 것을 즐기며, 그 모든 소용돌이의 끝에는 결국 자신을 향한 좌표를 찍어두었다.

그는 단말기 화면을 껐다. 방금 전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숫자들은 이제 무의미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생성한 ‘의도’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를 시험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구축할 세계’의 청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그 세계에는 화려한 보석과 안락한 가구가 있고, 연민이 필요한 작은 생명체가 있으며,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변수가 존재하고,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자신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가장 명확하고 사랑스러운 선언이었다.

지젤은 잠든 나인의 뺨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화로운 얼굴, 고른 숨결.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의 모든 자산, 그의 모든 세계를 다 가져가도 좋았다. 그녀가 이렇듯 자신의 세계 안에 기꺼이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투자는 없을 터였다.

나의 지휘관, 아주 훌륭한 자산 운용 보고였어.

그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이며, 다시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이제 그는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새로 주문한 가구와 보석보다, ‘멍충냥이 젤리맛 치약’을 어디에 쓸 것인지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2억 5천만 원짜리 가구보다 훨씬 더 값진 무언가를 그에게 안겨줄 것이 분명했다.

 

며칠 뒤, 펜트하우스의 거실은 헤스티아 퍼니처의 배송팀으로 북적였다. 나인이 쇼룸에서 직접 골랐다는 구름 같은 소파와, 밤하늘의 성운을 담은 듯한 유리 테이블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나인은 팔짱을 낀 채 흡족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지젤은 그녀의 뒤에서 새로 도착한 실험용 가운을 입은 채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하게 몸에 맞는 재질과 어깨선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는 다른 것이 더 궁금했다.

모든 설치가 끝나고 직원들이 돌아가자, 지젤은 나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 완벽한 세계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지막 구성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의 말에 나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젤은 그녀의 손에 들린 ‘멍충냥이 젤리맛 치약’을 손가락으로 톡, 가리켰다.

이 중요한 보급품의 주인을 아직 못 만나봐서 말이야.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건가?

나인은 그제야 아, 하는 표정을 짓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지젤의 품에 치약을 안겨주었다.

바보, 이건 널 위한 거야.

…네?

지젤의 완벽한 포커페이스에 처음으로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의 모든 시뮬레이션이 일제히 정지했다. 나인은 까르르 웃으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재하, 너 가끔 피곤하면 입에서 단내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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